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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과 쪽박 사이, ‘로또’ 판교의 운명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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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신도시가 들어선 곳은 ‘널다리’ ‘너더리’로 부르던 곳이다. 1976년 5월 4일 판교 등 남단녹지(6677만㎡)는 이른바 ‘5ㆍ4조치’로 건축행위가 전면 금지된다. 남단녹지는 그린벨트가 아니었으나 무기한 그린벨트나 다름없는 규제를 받았다. 정부가 2001년 이후 추진한 신도시 건설이 실현돼 지난해 12월말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2006년 5월 ‘판교 로또’의 행운을 안은 9428명의 당첨자 명단이 발표될 때 환호했던 입주예정자들이 지금은 떨어지는 집값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마지막 민간 분양이 치러진 22일 입주예정자들에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민간 중대형 아파트 청약이 최고 51대 1, 평균 27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돈 되는 아파트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이해해야지 전체 아파트 값이 오를 것으로 일반화해선 안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중앙SUNDAY는 판교 현장 분위기와 입주예정자들의 불만을 전하며 이같은 전문가 전망을 소개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21일 오후 찾은 판교 신도시 건설 현장. 대형 트럭이 공사장을 누비고,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3월 개교를 앞둔 학교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화도 간간이 들린다. 물이 흐르지 않는 금토천 북쪽에 자리 잡은 119소방안전센터에 들어섰다. 센터 관계자는 “동판교에는 입주자가 전혀 없어 밤에는 적막하기까지 하다”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공사장에서 안전 사고가 수시로 발생해 늘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자는 22일 현재 28가구뿐이다. 입주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다 됐으나 부동산시장 침체로 잔금 마련이 어려운 사람이 많아서다. 입주 시한을 넘기면 잔금에 대한 이자와 기본관리비를 부담해야 한다. 완공 건물을 찾기 어려운 동판교에서 아파트 단지 사이로 번듯한 건물이 보인다. 신도시 개발 때 수용 대상에서 제외돼 먼지 날리는 공사 기간에도 신자들이 드나들던 교회다. 길이 바뀌어 헛갈리는 신자가 많았을까. 도로 곳곳에 서 있는 교회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북서쪽으로 66만㎡(20만 평)규모의 테크노밸리가 들어설 자리에서는 기계음이 요란하다. 분당~내곡 간 고속도로를 지하화한 후 필요 없게 된 옹벽을 깨는 작업이다. 시멘트 구조물 사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철근들이 힘없이 늘어져 있다. 경기도시공사 이상우 대리는 “기업·연구소 등 280여 곳이 올해 다 착공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경기가 좋지 않아 지연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숲으로 들어서자 신도시 ‘입주 시장’을 선점하려는 광고판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굵직한 글씨로 전화번호를 써 붙인 분당가구프라자에 전화를 걸었다. 이상화 이사는 “아직 입주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인지 문의 전화가 없다”며 “경제가 워낙 안 좋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가 앞에는 어김없이 ‘매매’ ‘임대’라는 문구가 들어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살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신도시 중심가가 될 판교역 일대는 아직 텅 비어 있다. 주상복합건물과 상가 건물이 올라갈 자리다. 한쪽에선 지하철 공사가, 반대쪽에서는 터 닦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철 공사장의 한 인부는 “주민들이 소음 민원을 제기할지 몰라 입주 전에 공사를 끝낼 수 있도록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집값 급등 어려울 것”
‘판교 로또’가 집값 급락으로 물거품이 되면서 신종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채권을 사들인 민간 아파트 당첨자들이 앞장섰다. 채권 상환을 요구하며 지난 20일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2006년 1월 분양 당시 3.3㎡당 분양가 1350만원 외에 채권입찰제에 따른 채권을 추가로 샀다. 채권입찰제는 주변 시세보다 헐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도록 분양가에 더해 주변 시세의 최대 90%까지 채권을 사도록 한 제도다. 당시 이 아파트의 채권입찰제 상한액은 분양 면적 125.4㎡(38평)는 2억8000만원, 145.2㎡(44평)는 6억500만원이었다. 이들은 5월 입주를 앞두고 시세차익은커녕 오히려 집값이 내려가는 바람에 손해를 보게 됐다며 채권값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대주택 입주 예정자 역시 높은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105㎡ 기준 임대보증금 2억4600만원, 월 임대료 59만원은 인근 분당의 전세가(1억5000만원)와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증금과 임대료를 내리고, 임대 후 분양하는 아파트의 확정 분양가를 미리 공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판교역 외에 서판교역을 빨리 만들어 달라는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 한 입주 예정자는 국토해양부 민원 코너에서 “로또 판교가 이제는 애물단지로 변했다는 소식을 매일매일 확인하면서 마음도 몸도 많이 지쳤다”며 “동판교에만 집중된 교통의 편리성이 서판교에도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나서 ‘가치’를 올려 달라는 얘기다. 이 밖에도 이들은 ▶판교 메모리얼파크(추모공원) 추진 반대 ▶신도시 북측 외곽순환도로 이설 ▶경수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전철역만 해도 판교역~서판교~인덕원~광명 노선은 아직 구상 단계”라며 “입주 예정자들이 서명운동까지 하며 서판교역 조기 착공, 역 추가 설치를 하라는 것은 현 단계에선 비현실적 요구”라고 말했다.

전매가격은 분당보다 높아
2006년 5월 4일 ‘판교 로또’의 행운을 안은 9428명의 당첨자 명단이 발표되자 희비가 교차했다. 수도권 46만7000명이 청약해 최고 2073대1, 평균 경쟁률 49대1의 바늘구멍을 뚫은 당첨자들은 환호했지만 45만여 명은 아쉬워했다. 당시 판교는 부동산 광풍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당첨자들은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입주 예정자들은 시세차익은커녕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존 주택이나 전셋집을 내놓아도 새 주인을 구하기 어렵다. 잔금 낼 돈을 구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게다가 올해 분양하는 판교 아파트는 2006년 분양가(3.3㎡당 1830만원)에 비해 200만원 이상 낮아졌다. 삐딱한 주위 시선도 못마땅하다. 판교입주예정자연합회 신명식 회장은 “일부에서 판교 분양받아서 망했다고 해서 ‘망교’라고 한다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다”며 “입주자 뜻을 모아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민간 분양이 치러진 22일 입주 예정자들에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민간 중대형 아파트 청약이 최고 51대1, 평균 27대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된 것이다. 우리은행 안명숙 팀장은 “분양가가 떨어졌고 입지 자체가 좋아 고객들에게 청약을 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1차 분양단지보다 싼 분양가, 중대형 일반 아파트 중 마지막 물량이라는 희소성, 강남·분당 사이의 입지 여건, 전매 제한 완화 등 사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돈 되는 아파트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이해해야지 전체 아파트 값이 오를 것으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판교·분당·용인의 아파트 값이 급등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미영 스피드뱅크 분양팀장은 “서울 남부 지역에서 공급이 많고 실물경제도 나빠 지금이 저점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 단기간에 급등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오랜 기간 금융 부담을 지고 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돈이 모자라면 주공 환매 등을 통해 과감히 처분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분당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지방 이주 등의 경우 주공의 동의를 전제로 합법적으로 전매할 수 있는 물건이라며 신도시 매물을 내놓고 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분당 신도시 아파트에 비해 다소 비싼 편이다. 30평대 초반의 경우 동판교는 프리미엄을 포함해 5억5000만원, 서판교는 5억2000만원 이상이다. 1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40평대는 층이나 입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아 7억~9억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물량이 많지 않아 거래는 드문드문 이뤄지고 있다. 일부 입주 예정자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입주권 상태에서 전매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현역공인중개 송익주 부장은 “전매 제한을 다 풀어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입주 예정자들의 자금난을 덜어 주고 부동산 시장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ksline@joongang.co.kr
※황태윤(연세대 상경계열1) 인턴기자가 기사 작성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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