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리뷰>폴란드 영화거장 '키에슬로프스키' 서울서 추모영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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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폴란드의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타계 1주년을 맞아 국내에선 처음으로'키에슬로프스키 추모영화제'가 28일부터 7월4일까지 명보아트홀에서 열린다.이와함께 88년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그의 걸작'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 키에슬로프스키 추모영화제 직후에 개봉된다.

키에슬로프스키 추모영화제는 그에게 대중적 명성을 안겨줬던'베로니카의 이중생활',3부작'세가지 색-블루.레드.화이트'는 물론 그의 역작인'십계'를 망라해 상영한다.

안제이 바이다.로만 폴란스키와 함께 폴란드가 낳은 3대 영화작가로 평가받는 키에슬로프스키는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영상미학을 보여줘 영화를 통한 사상가.철학자로 불렸다.

각각 50분짜리 10부작인'십계'는 서양인들의 의식 저변에 배어있는 도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의'10계명'을 주제로 현대 폴란드의 어두운 현실에 깔려있는 삶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이'십계'중'사랑'과'살인'을 주제로 만든 작품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이를 장편영화로 리메이크한 것이 바로'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다.이중'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개봉돼 화제가 됐고 미개봉작으로 남아있던'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 이번 추모전에서 빛을 보게 됐다.

키에슬로프스키는 폴란드의 명문'우츠'영화학교를 나와 처음엔 다수의 다큐멘터리작품으로 폴란드의 어두운 현실과 절박한 실존의 현장들을 담아냈다.

이번에 선보이는'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이같은 다큐멘터리적인 현실감에다 관객의 시선을 극도로 자극하는 부조리한 진행으로'인간으로서 가장 나쁜 짓'인'살인'의 사회적 심리분석을 펼치고 있다.

연관성이 없을 것같은 3명의 인물인 떠돌이 청년,냉소적인 택시운전사,풋내기변호사가 아무런 설명없이 하나의 살인 사건으로 연결되는 이 영화는 인간의 사소한 악행들이 메마른 폴란드의 잿빛 도시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처럼 흘러나오다 갑자기 살인(떠돌이 청년이 아무런 이유없이 택시운전사의 목을 조른다)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이런 살인에 대한 사회제도의 대응은 또 다른 살인이다.충격적인 택시운전사 살인장면은 사회병리를 파헤치는 재판과정의 담론을 무의미한 통과의례로 만들며 범인의 교수형 장면으로 귀결된다.살인이나 교수형 모두 다 명분과 목적이 없는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는'살인에…'을 만든 후 프랑스로 건너가 걸작 시리즈'세가지 색'을 완성한 얼마후인 지난해 3월 심장마비를 일으켜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이번 그의 추모영화제는 그의 극영화로만 꾸며져 초기 다큐멘터리들을 접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세가지 색-블루.레드.화이트'로 국내에 잘 알려진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추모영화제가 열린다.아래는 그의 미개봉작'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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