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내전이 한창이던 1983년 베이루트. 라위 하지는 "전쟁에는 ‘집단적 자살’이라는 속성이 있다”고 했다. [베이루트 AP연합]
-성장기에 레바논 내전을 겪었다던데.
“18세에 레바논을 떠났다. 베이루트를 떠나는 소설의 ‘바쌈’처럼 10대의 난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영화나 책에서 구원, 안식처, 기회의 땅으로 표방되는 서구사회를 경험하고 싶었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디어 헌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당시 레바논에서 ‘디어 헌터’가 상영됐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크리스토퍼 워켄이 러시안 룰렛을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쉽게 총을 구할 수 있었기에 러시안 룰렛은 언더그라운드 게임으로 퍼져나갔다. 그 장면을 소설의 중추적인 요소로 삼은 건 자살을 철학적·존재론적 면에서 생각해 보고 싶어서였다. 모든 전쟁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의미에서의 자살’이란 요소가 있다.”
“극한상황에는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깃들기 마련이다. 또, 미국식 이야기(영화)가 끼치는 영향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많은 이들이 ‘디어 헌터’같은 영화 속 영웅이 되라는 환상에 부추김을 받아 입대했다.”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하다.
“사진작가 출신이다. 글을 쓸 때도 대상이 되는 장면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구도를 잡고 영상을 포착한다.”
-‘1만 개의 폭탄’ ‘1만 번의 키스’ 등 ‘1만(ten thousand)’이란 표현이 반복된다.
“‘1만’을 반복할 때 생겨나는 리듬은 종교 경전이나 기도문의 그것과 같다. ‘1만’을 세속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데 쓴 건 제도화된 종교의 위선과 종교전쟁을 고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아랍 구어로는 ‘수많은’이란 뜻이다.”
-지금 가자 지구에도 ‘1만 개’의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인종차별 국가라 보는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 동의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점령하고 모욕하는 걸 중단하지 않으면 그 지역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 긴 휴전 중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도 강대국 간 냉전의 피해자다.”
-전쟁의 본질이 무엇일까.
“결국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영토 분쟁이다.”
-1만 개의 폭탄이 쏟아져도 희망이 있을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생존을 향한, 삶을 향한 희망이.”
이경희 기자
◆레바논 내전=1975년 팔레스타인 난민의 무장단체가 탄 버스를 기독교 민병대가 습격하며 시작된 분쟁. 시리아가 정규군을 주둔시키고 이스라엘과 프랑스·스웨덴 군이 개입하는 등 국제전 양상으로 번졌다. 1990년 휴전이 선포되기까지 모두 1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