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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 표현만 212차례…흑인 대통령 시대에 안 맞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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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11면

미국 근대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 of Huckleberry Finn)』이 중·고교 필독 도서에 적합한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일부 교사가 최근 “흑인 대통령 시대가 펼쳐진 마당에 흑인을 무례하고 무식하고 발음도 정확하지 못한 ‘2등 인간’으로 묘사한 인종주의적 소설을 청소년 독서 목록에 계속 포함시키는 게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美 중·고교 필독도서 ‘허클베리 핀’ 퇴출 논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흑인 노예제가 기승을 부린 시대(1835~1845년)를 배경 삼아 허클베리 핀(약칭 허크 핀)이란 소년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농장에서 탈출한 노예 짐과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며 겪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사회상을 신랄하게 풍자하며 미국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잘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잔인한 묘사, 비속어 사용, 흑인을 비하하는 ‘니거(Nigger·검둥이)’란 표현을 212차례나 사용해 1884년 출간 이후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다. 일부 주(州)에선 도서관의 열람 금지 목록에 여러 차례 포함되기도 했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작품이란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선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작품이라고 비판한다.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사람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고교 영어 교사인 존 폴리(48). 한 지역 신문에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는데, N-word가 들어간 소설들은 계속 잘나가는가”라는 요지의 칼럼을 게재했다. 2009년 영문학 커리큘럼에서 인종차별적 소설들을 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칼럼엔 수많은 찬반 댓글이 붙었고 LA타임스가 이 논쟁을 기사화해 관심이 증폭됐다.

폴리는 비슷한 이유를 들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 퓰리처상 수상작인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커리큘럼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은 흑인 남자 로빈슨과 그를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로스쿨 학생들의 필독서 중 하나다.

폴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적이고 언변이 탁월하다. 반면 수업 중에 다루는 소설 속 흑인들은 하나같이 부정적 이미지로 정형화돼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고전은 고전대로 해석하고 읽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크다. 셀리 피시킨 텍사스대 교수는 “소설 속의 화자(話者·허크 핀)와 작가의 의도를 혼동해선 안 된다. 트웨인은 남북전쟁 뒤 흑인에 대한 백인의 보복 린치를 강력히 반대하는 칼럼을 쓴 인물이다. 학생들에게 저자의 양심을 함께 가르치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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