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대의원들의 '의미있는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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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일로 마감된 신한국당의 지구당 개편대회에서는 새 바람이 불었다.지구당위원장들은 대의원들의 새로운 주문에 직면해야 했다.“틀에 짜인 시나리오에 따를 수 없다”는'항명(抗命)'이었다.심지어 경기도 남양주지구당 개편대회에서는“위원장이 지지하는 후보와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다르다.내 소신대로 찍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의원들의'반란'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광주지역의 어느 대의원은“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이다.위원장이 대의원들의 표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신한국당의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나타난 위원장들의 대의원 의사 존중 추세는 그 의미를 평가할만 했다.위원장들은 지지후보를 섣불리 밝히기 어려웠다.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는 지구당의 분열마저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위장일임(僞裝一任)도 있었다.몇몇 위원장은“나는 관여하지 않을테니 대의원들의 소신에 따라 자유 투표하라”고 선언했다.그러나 일부는 유력 주자의 핵심참모를 하고 있고,또 일부는 평소의 언행으로 미루어 특정주자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하지만 이같은 경우조차 일부 대의원들은 “위원장이 특정 주자의 지지를 강요했다가는 망신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원장의 대의원 장악력은 틀림없이 약해지고 있었다.자신의 친척.운전기사를 멋대로 대의원으로 정하던 시대도 지나갔다.상당수 지역에서 위원장들은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 뽑았다는 구설수가 돌까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경기도 안성지구당 운영위원회에서는 대의원 명단 초안을 미리 준비하기는 고사하고 백지상태에서 위원장이 운영위원들과 갑론을박을 벌이며 대의원을 선출했다.위원장이 대의원 선출을 위한 운영위원회에서 아예 퇴장하거나,심지어 제비뽑기가 동원되는 경우도 나타났다.

다만 이같은 상향식 의사결정 추세의 문제점은 지역주의였다.위원장과 대의원 사이의 갈등 이유가 지역출신의 주자와 위원장의 지지주자가 다르기 때문인 지구당이 많았던 점은 옥의 티였다.

이번에 선출된 신한국당의 대의원들은 지역이나 연고보다 인물과 정책을 따져야 한다.그래야 모처럼 싹트기 시작한 진짜 민주주의가 우리 정치풍토에 정착할 수 있다.그래야만 참다운 대의원 혁명이 가능하다.

주정완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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