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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디자인 맞춤시대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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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잘 자고난 아침처럼 상큼한 향기를 만들어주세요.”(향수가게에서)“고기는 일체 빼고 치즈는 두배로 얹은 피자요.”(피자점에서)“만기때 한번에 안갚고 다달이 나눠갚는 대출상품은 없나요?”(은행에서) 바야흐로 1인1색(一人一色)의 시대.저마다 까다로워진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한 맞춤상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흔히 맞춤 하면 떠올릴 구두며 양복 뿐이 아니다.동네 반찬가게의 김밥부터 대형 아파트까지 먹고 입고 사는데 필요한 각종 상품마다 소비자 개개인의 주문에 충실히 따르는 맞춤 제작이 범람한다.맞춤시대의 시작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먹고 살 만해졌다는 증거”라고 주부 이은경(44.서울송파구방이동)씨는 잘라 말한다.너나없이 못살았던 옛날엔 골라 먹고 골라 입는'사치'는 엄두도 못냈다는 것.“하지만 요샌 누구든 뭘 하나 사도 남다른걸 장만하려고 애쓰죠.”'오직 나 하나만 위한 물건'이라면 값싸고 편리한 기성품의 매력을 마다한채 돈도 시간도 더 드는 맞춤의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게 요즘 사람들이란 얘기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라'며 급속히 번지는 패션업계의 맞춤 바람을 살펴보자.보세옷가게 사이 사이 1년새 맞춤옷집들이 크게 는 이대앞 거리.5개월전 문을 연'크로마'의 김기연실장은 “비슷비슷한 기성복들에 식상했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전한다.몸매에 결점이 있거나 아줌마들만 맞춤옷을 입는다는건 뭘 모르는(?)소리.오히려 패션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찾아와'이런 소재에 이런 디자인으로 해주세요'라며 복잡한 요구사항을 낸다.정장 한벌에 최소 40만원대니까 부담이 꽤 되는데도“내 몸에 꼭 맞는다”며 한번 온 사람은 계속 찾는단다.

비단 겉옷 뿐일까.꼭맞게 입어야 몸매가 예뻐진다고 해'중년여성 열에 대여섯은 입고 있다'는 맞춤속옷,건성.중성.지성으로 나눈 것도 모자라 계절별로 달라지는 개인의 피부변화까지 신경쓴 맞춤화장품에 맞춤향수까지 갈수록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성냥갑처럼 똑같은 아파트'도 이미 옛말이 돼버렸다.벽지와 타일.주방가구등 건축비의 15%선까지 소비자들이 마감재를 선택할 수 있게 한'옵션제'는 아파트에 맞춤개념을 도입했다.가구업계 역시 자기 집과 취향에 오차없이 꼭 들어맞는 붙박이장등 맞춤가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대형 가구업체들이 앞다퉈 이 분야에 손을 댄지 오래다.이밖에 개개인의 생활주기에 맞춘 종신보험,고객이 금리와 원금상환방식.담보여부를 원하는대로 선택하는 은행대출,코스와 일정을 손님들이 정하는 주문여행등 업계마다 신종 맞춤상품들이 속속 얼굴을 내민다.

이두희(고려대.경영학)교수는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평준화된 소비에 불만이 커지게 마련”이라며 최근의 맞춤 바람을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 진단한다.한사람 한사람에게 맞춰주는 주문생산이야말로 소비자의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생산자 입장에서도 경쟁에서 이기려면 가장 세분화된 시장인 소비자 개개인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맞춤상품이 아닌데도'맞춤'이란 이름을 내거는 유사상품들이 증가하는 것도 이때문이다.“비용탓에 무한히 다양한 제품을 내놓을 수 없는 기업체들이 특정 제품 한가지를 맞춤상품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종종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이런저런 성분을 강화했다는 각종 기능성 식품들이 한 예. 까다로워진 욕구만큼이나 까다로운 눈으로 이제 다양해진 상품들의 효용을 따져보는건 소비자의 몫이다. 글=신예리.사진=오동명 기자

<사진설명>

맞춤향수 전문점에서 자신에게 맞는 향을 고르는 고객. 오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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