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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경쟁력을 말한다 ① “대학생 선발 규제하는 곳은 사회주의 국가 빼곤 한국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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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기자가 질문도 하기 전에 ‘입시’ 얘기부터 꺼냈다. 김 총장은 “당장 대학별 고사를 치르고 싶지만 정부가 2012학년도부터 완전 자율화를 약속한 만큼 2년 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지 못하는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외에는 한국이 유일해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강조했다. 19일 연세대 총장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대입 자율화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강했다. 의학자답게 차분하면서도 논리정연했다.

만난 사람=양영유 교육데스크

 -정말 대학별 고사를 치를 계획인가.

“계속 고민해 왔다. 연세대는 3불(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을 지키면서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많은 방법을 써봤다. 노하우도 쌓았다. 대학별 고사만큼 합리적인 선발 방식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고사라는 말도 잘못됐다. 대학별 고사가 정확한 표현이다. 본고사는 예비고사를 치르던 시절에 사용했던 말이다. 논술 가이드라인이 없어져 대학이 영어 지문이든, 문제풀이든 다양한 문제를 내고 있다. 대학별 고사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연세대가 치고 나가면 타 대학에 영향이 있다.

“우리 철학에 동의하는 대학은 대학별 고사를 택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각 대학이 좋은 방법을 결정하면 될 일이다.”

-사교육비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

“대학별 고사 인식이 잘못돼 있다. 1960~70년대처럼 문제를 어렵게 내면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많은 이가 대학별 고사 부활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고사를 없앴는데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는가. 사교육비는 입시 방법과 무관하다. 사교육은 특정 대학과 전공에 대한 초과 수요가 있어 생기는 것이다.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와 협의할 생각인가.

“대교협은 전국 198개 4년제 대학이 회원이다. 대학마다 입장이 제각각인데 동일한 입시안이 나올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대학별 고사를 치든, 수능이나 내신만으로 뽑든 대학이 선택할 일이다. 정부와 대교협이 하면 책무성이 있고, 개별 대학이 하면 책무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대교협이 획일적인 입시틀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규제를 했던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개별 대학이 책임을 지고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율이다.”

-그래도 대학별 고사가 거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3불을 고집하는 이들과 우리가 보는 교육현실은 다르다. 누가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를 놓고 끝장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대학별 고사가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수시와 정시의 중요 요소가 다르므로 수험생은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만큼 부담도 크다. ”

-어떤 시험을 구상 중인가.

“입시를 단순화할 것이다. 대학별 고사를 치르면 선택과목과 시험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수능배치표 같은 서열이 깨진다. 수능·내신 성적이 안 좋아도 연세대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연세대가 좋아 입학하는 학생을 뽑고 싶다.”

-몇 과목을 치를 계획인가.

“ 내가 68학번인데 본고사를 네 과목 치렀다. (웃으며) 고1 때는 놀다가 3학년 때 죽어라 공부했다. 국제화 시대니까 영어는 무조건 봐야 한다. 단과대별로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인문계열이라면 쓰기(논술), 이공계는 수학 등을 평가할 예정이다. 쓰기는 수업의 기본이므로 포함시켜야 한다. 두 개를 기본으로 다른 과목을 추가로 본다. ”

-수능성적 활용은.

“수시 1이 없어지고 수시와 정시 두 개만 남는다. 수시는 내신을 반영하지 않고 대학별 고사만으로, 정시는 수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내신 평가는 비교육적이다. (조카가 얘기하는데) 친구끼리 공책도 안 보여준단다. 이게 경쟁은 아니다. 그래도 내신 준비를 잘한 학생이 있으므로 수시에서 일부는 뽑겠다.”

-정부와 대교협은 입학사정관제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이 입시 문제 돌파구인 양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대학에) 1년간 지원한 수험생이 8만 명인데 사정관은 다섯 명뿐이다. 사정관은 제한된 특별전형에나 쓸 수 있는 보조 수단이다. 주류를 바꿀 대안은 아니다. 미국은 대학 결정에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난리가 난다. 수능성적 서열이 매겨졌는데 사정관이 잠재력만 보고 뽑았다면 납득하겠는가.”

-입시 외에 정부의 규제 ‘대못’이 뽑혔나.

“(손을 저으며) 아직도 배고프다. 사립대가 자유롭게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학교 자산이 교육과 수익용으로 나눠져 있는데 수익용은 세금이 너무 많아 유지하기 어렵다. 세금을 완화해 주고 기부금의 세금 문제도 해결해줘야 한다. 한 독지가가 땅을 기증했는데 농지는 대학 소유로 등기할 수 없어 기증자 이름으로 근저당을 설정했다. 정원도 자율화해야 한다. 총 정원 내에서 계열별로 모집해야 하는데 이곳을 줄여 저곳을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 정원에 얽매이면 옴짝달싹 못한다.”

-2012년 세계 100대 대학 진입과 2020년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핵심 목표로 내걸었다.

“성공 요인은 교수에 달려 있다. 올해부터 강조하는 것이 ‘언더우드 특훈교수’다. 지난해보다 7명을 더 뽑아 11명이 됐다. 임기 때까지 40명으로 늘리겠다. 40명이 4년에 한 번씩 ‘빅’ 저널에 논문을 내면 1년에 10편이 나온다. 5년 축적되면 학교의 평가는 수직 상승한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세계적 학자를 키우는 데 25년쯤 걸린다. 우리가 선정한 교수가 15년 된 이들이라면 10년만 지원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

-가르치는 경쟁은 않고 뽑는 경쟁만 한다는 지적이 있다.

“올해 신입생부터 졸업인증제를 적용한다. 영어는 필수고, 중국어·일본어 중 하나를 더 인증받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실력을 보증하는 것도 내 책임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에 제안한 ‘1조원 아카데믹 뉴딜’ 정책이 뭔가.

“젊은이의 좌절을 줄여줘야 한다. 전국의 대학에 1조원을 투입해 고급 인력이 실업난을 극복하며 대학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학부생에게도 연구보조원을 개방해야 한다.”

-휴학생이 많아질 것 같다.

“외환위기 때(7%)만큼은 될 것 같다. 동문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10만원 장학금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종의 위기 극복 장학금이다. 1만 명이 10만원씩 모으면 10억원이다. 이 돈이면 120명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있다. 어떤 분이 80명분의 장학금을 내겠다고 해 200명이 걱정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SKY 대학, 특히 맞수 고려대와의 경쟁이 치열하다.

“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란 말 싫어한다. (껄껄 웃으며)순서가 잘못됐다. 고려대와 승부보다는 함께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복수 학위제도 논의 중이다. 송도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고려대의 장점은 역시 동문 간의 끈끈한 네트워크다.”

-건강 관리는.

“매일 한 시간씩 학교 뒷산을 등산했는데 자주 못한다. 너무 바빠 건강 관리를 따로 할 시간도 없다.”

정리=정현목 기자, 사진=김재미 인턴기자

◆김한중 연세대 총장=1948년 서울에서 부친이 목사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에서 보건학 박사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보건정책·관리 박사과정도 밟았다. 보건정책·예방의학을 전공했다. 연세대가 좋아 입학했다고 밝힐 정도로 애교심이 강하다. 두 자녀도 모두 연세대를 졸업한 ‘연세 가족’이다. 지난해 2월 1일 16대 총장에 취임했다. 94년부터 97년까지 농구부장을 맡아 우수한 선수를 스카우트, 농구부가 농구대잔치에서 3년간 두 번 우승하는 전성시대를 열었다.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을 역임한 뒤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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