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 선사유적지 '水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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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진주 시에서 남서쪽으로 4㎞.진양군과의 경계에 진양호를 담고 있는 남강댐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차를 몰아 굽이굽이 시골길을 30분쯤 돌아들면 대평면상촌리,대평리를 지나는 길가에서 이젠 주민들이 떠난 텅빈 민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남강댐공사로 곧 수몰될 지역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마을을 지나 남강변에 펼쳐진 텃밭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천막과 굴착기들이 이곳이 발굴지역임을 알게 해준다.너무도 광범위한 지역이라 논두렁을 걸어 일일이 확인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 주거.경작유적지로 귀중한 유물이 발굴된 지역이지만 남강댐의 확장공사와 함께 수몰될 곳이다.최근 경남 남강댐 수몰예정지인 산청군소남리와 관정리,진주시대평리.상촌리.내촌리 일대에서는 구.신석기시대로부터 원삼국시대로 이어지는 주거지와 경작지들이 발굴돼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켰다.특히 유적들이 30여만평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돼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주거.경작지로는 최대 규모며 신석기시대 옹관묘,청동기시대 경작지등 학계의 새로운 연구를 촉발할 자료들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

91년말 1차 지표조사를 시작,95년 5월 부산여대와 경상대에 의한 시굴조사를 거쳐 지난해말부터 진주박물관.한양대박물관등 16개 기관이 21개 지구로 나눠 영영 사라질지도 모를 이 지역의 역사를 캐고 있다.특히 경남대박물관(관장 김봉렬)이 이곳 대평면대평리 어은1지구에서 발굴한 2천평 규모의 기원전 5세기 청동기시대 밭터는 현존 최고(最古)로 알려진 경기하남시미사리 백제유적지 밭터보다 1천년이나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대박물관(관장 심봉근)도 기원전 3000~25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유일의 옹관묘이자 현존 최고(最古)의 옹관묘를 대평면상촌리 유적지에서 발굴했다.이것도 부여송국리 옹관묘보다 2천여년이나 앞선다.그동안 신석기시대의 옹관묘가 발견되지 않아 일부에선 중국.일본 유래설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우리 고유의 것이 나와 더욱 활발한 연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처럼 귀중한 유물이 속속 발굴되고 선사시대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유적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도 발굴을 더는 생각지 못한 채 수몰광경을 팔짱끼고 바라봐야 할 형편이다.

3분의1 정도를 발굴한 현재 당초 총발굴비로 책정된 예산 40억여원을 모두 사용한 상태에서 추가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발굴이 중단될 실정이기 때문. 조사기관들은 필요한 추가예산을 신청한 후 발굴지역으로부터 철수를 시작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발굴이 진척되면서 새로운 유적지가 추가로 나타나고 있어 전면적인 재조사와 전폭적인 인력.예산지원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추가지원에 나설지 의문이기 때문.또 이주하지 않은 주민들은 틈만 나면 유적지에 씨를 뿌리고 경작을 하고 있어 유적지 훼손도 심각하다.

일부 발굴기관이 철수한 지역에서 경작을 하려는 주민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인 박주혁(29.한양대 고고학 석사과정)씨는“최대규모의 경작지와 주거지유적이 제한된 기간과 예산으로 떼밀리듯 구제발굴에 그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며“수십년동안 경작을 해온 주민이나 공기를 맞춰야 하는 댐공사 담당자,한정된 예산을 운영하는 정부기관등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의 숨결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개발논리로 덮어버리는 것은 재고해볼 문제”라며 안타까워 했다. 진주=곽보현 기자

<사진설명>

남강댐 수몰 예정지에서 진주박물관팀이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취락의 경계에 펼쳐진 환호(環濠)를 발굴,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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