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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정’에 울고 웃는 우울한 도시의 밤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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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톱스타의 자살이 생의 허무감을 부추긴 것일까? 배우 최진실의 사망으로 떠들썩했던 지난해 10월.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서울 강남의 최고급 룸살롱, 속칭 ‘텐프로’에 나가는 여성들의 잇단 자살 소식이 들렸다. 이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우울증’이었다. 매일 밤 눈 먼 돈이 종이처럼 뿌려지고, 여성들의 죽음이 깃털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곳. 국내외 경기 침체에도 텐프로의 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월간중앙>이 이 업소에서 5년째 일하는 미희(34·가명) 씨와의 세 차례 동행취재를 통해 그 숨겨진 이면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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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신드롬인가. 요즘 서울 강남 ‘텐프로(10%)’ 아가씨 서너 명이 잇달아 자살했다는데….”

‘1% 미인’ 찾은 부자들이 종이처럼 돈 뿌리는 곳… 요즘에도 룸 없어 주차박스 안에서 술 마시며 대기 #어느 ‘텐프로’ 여성의 고백

톱스타 최진실의 자살로 나라가 시끌벅적했던 지난해 10월. 평소 아는 취재원이 식사 도중 건넨 말이었다. 귀가 솔깃해졌다. 텐프로라면 서비스 여성들의 미모가 연예인을 능가하고,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여성이 수두룩하다는 강남 최고의 룸살롱 아니던가?

노래하고 술만 따라주고 받는 하룻밤 팁이 100만 원이 넘는다는 그곳. ‘미모’라는 화려한 무기로 ‘돈’이라는 욕망을 쉽게 채우는 여성들의 자살 이유가 궁금했다.

강남에 있는 텐프로 가운데 A업소에 나간다는 미희(34·가명) 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말이었다. 지인으로부터 그의 전화번호를 건네 받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취재에 응할지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미희 씨는 <월간중앙>의 취재에 흔쾌히 응했다. 단, 본인의 얼굴과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다. 전화통화를 하며 마땅히 만날 장소를 잡지 못하던 우리는 일단 서울지하철 학동역 2번 출구 앞에서 보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30여분쯤 넘겼을까? 한 여성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가왔다.

170cm 정도 되는 큰 키에 긴 생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고,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은 2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여성이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었지만 늘씬한 키에 고운 피부며 옷 태를 봐도 남들의 시선이 한 번쯤 머무를 정도의 미모였다(그의 나이가 34세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미희 씨는 2년간의 텐프로 아가씨생활을 청산하고 지금은 업소의 마담으로 일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어중간하게 만난 우리는 수인사를 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어디서 이야기할까요?”

미희 씨는 인근의 커피 전문매장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여기서요?”

“제가 일하는 가게는 아직 문을 안 열었어요.”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간 우리는 서로 커피 값을 내겠다며 잠시 승강이를 했다. 언뜻 들여다본 그의 빨간 지갑 속에는 구겨진 수표가 수북이 보였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제가 대접할게요.”

미희 씨는 두 잔의 커피를 들고 흡연석에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그는 묻지도 앉고 태연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울증에 잠 못 이루는 ‘1% 강남 미인들’

미희 씨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예상대로 동료들의 자살에 관한 것이었다. 미희 씨는 담배 연기를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진실 죽음 직후 2주일 동안 동료 네 명이 죽었어요. 끔찍한 일이죠. 나름대로 복잡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사망 원인의 100%가 우울증이라고 확신해요.”

한 달에 수천 만 원을 버는 텐프로 여성들의 삶은 화려할 것 같지만, 술과 빚에 쪼들리는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고 있단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들은 항상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미희 씨 역시 한때 항우울제를 먹으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미희 씨의 근무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다. 손님들이 오전 7~ 8시까지 술을 마시면 퇴근시간도 따라서 늦어진다. 하루에 보통 10개의 룸을 돌며 서비스하는데, 각 방에서 받는 팁이 10만 원 선이다. 하루에 100만 원 정도 버는 셈이다. 한 달에 20일을 꼬박 일한다고 가정하면 2,000만 원. 업소에서 선불금 형태로 주는 월급 1,200만~3,000만 원의 기준은 아가씨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

손님들이 자주 찾는 ‘에이스’급은 3,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1년이면 수억 원대의 돈을 버는 이들 여성이 망가지는 이유는 씀씀이가 크기 때문이다.

“버는 돈이 많은 만큼 쓰는 돈도 많죠. 언니,(미희 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언니’라고 호칭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랑 신발이랑 전부 얼마인 줄 알아요? 카디건은 300만 원, 바지는 50만 원, 신발도 한 50만 원 할 걸요. 이런 것이 기본이라고 보면 돼요. 한 달에 1,000만 원 벌어도 나가는 돈이 수백만 원이니 빚은 빚대로 지고 악순환의 연속이죠.”

큰 돈을 벌다 보니 도박에 빠진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10억~20억 원 이상의 빚을 짊어지고도 해외까지 원정도박을 나가기도 한다.
“주말에 놀러 간다던 아가씨가 화요일에도 출근하지 않아 알아봤더니 마카오에 잡혀 있더라고요. 현지에서 도박을 하다 돈을 빌려 써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업소에서 해결해주고 일단 데려왔죠. 그 애는 가게에 묶인 빚이 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예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용돈을 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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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희 씨가 처음 텐프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5년 전이었다. 서울에 있는 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친구 한 명이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며 강남의 한 고급 룸살롱으로 데려갔다.

친구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끌려간 그곳에서 미희 씨와 친구,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친구의 남자친구는 밴드까지 불러 새벽까지 실컷 놀았다. 집에 가려고 나오는데 친구의 남자친구가 미희 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용돈을 드려도 될까요?”

그 남자친구는 미희 씨에게 1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보였다. 순간 당황해 하며 친구를 바라보자 친구는 받아 두라는 눈짓을 해보였다. 그날 같은 룸에 있던 마담도 미희 씨를 눈여겨보았다. 입구까지 따라 나와 아는 척했다.

“참 예쁘게 생겼다. 전화번호 좀 가르쳐줄래?”

마담은 미희 씨의 등을 토닥이며 그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마담이 건넨 봉투에는 역시 100만 원어치 현금이 담겨 있었다. 하룻밤에 200만 원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미희 씨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학을 준비하던 중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져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에게는 큰돈이었다.

미희 씨는 이후 마담의 콜 전화에 가끔 업소에 들르다 결국 눌러앉게 됐다. 업소에서는 미희 씨처럼 처음에 계약조건 없이 지인의 소개로 나오게 된 여성을 ‘민간인’이라고 부른다. 이들 ‘민간인’은 손님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 종종 인기 있는 여자 연예인들이 업소에 나와 손님을 맞기도 하는데, 이들도 ‘민간인’으로 분류한다.

연예인은 업소에 정기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마담이 부를 때 가끔 나와 손님들로부터 팁을 받아 간다. 미희 씨는 텐프로 생활을 전업으로 삼은 직후 다니던 대학원 공부를 1년간 포기했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평생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다시 대학원에 복학했다. 새벽 5시에 업소 일이 끝나면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에 학교로 가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결국 어렵게 공부한 끝에 논문을 써 내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가려던 꿈은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미희 씨가 나가는 업소에도 대학 출신 여성이 많다. 미희 씨가 팀으로 운영하는 아가씨 중 3명은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다른 한 명은 발레를 전공했다. 신용카드 값을 갚기 위해 잠깐 발을 디뎠다 아예 직업을 바꾼 여성도 있다. 일반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수입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유혹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큰돈을 벌기 위해 이 길을 택한 여성도 있지만, 남부럽지 않은 집안 출신도 있다.

“제가 아는 동생은 부모가 모두 교수인데 돈을 쓰고 싶어 이곳에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뻔한 교수 부모 월급으로는 사치를 못한다나요?”

현재 활동 중인 연예인 중에서도 텐프로 출신이 있다.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나 연예기획사 관련자 눈에 띄어 연예인으로 데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방학 동안에는 대학 재학생들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다.

취재 첫날 미희 씨가 출근하는 강남의 업소로 따라갔다. 업소 이름 옆에 작은 글씨로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을 뿐, 밖에서 볼 때는 술집인지 룸살롱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홀이 나왔다. 룸이 10개 정도 되고, 커다란 주방에서는 한창 음식 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도 이리 저리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한쪽 룸에는 예쁘게 차려 입은 아가씨 한 명이 때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 출근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 하니 제 때에 따뜻한 밥을 챙겨 먹기는 불가능하다. 이 업소에서는 한 끼에 5,000원씩 받고 식판에 밥을 팔고 있었다.

시계가 오후 8시30분을 가리키자 아가씨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멈칫하는 기자에게 미희 씨는 “매일 얼굴을 보는 우리끼리도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신상명세를 알려고도, 물어보지도 않기 때문에 마음 편히 앉아 있다 가라”고 말했다.

미희 씨의 말은 맞았다. 기자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누구냐고 묻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 대기실에 앉아 있던 1시간여 동안 기자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바비인형처럼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긴 다리를 한 그들은 대기실에 앉아 화장을 고치거나 옆자리 아가씨들과 수다를 떨며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미자(가명)라는 아가씨는 겨우 스물 살 남짓 돼 보였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했지만 앳된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제인(가명)이라는 아가씨는 단발머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진한 회장을 하지 않았지만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대체로 이런 여성들은 ‘새끼마담’으로 불린다. 서너 명의 아가씨를 팀으로 데리고 자신의 단골손님을 유치하며 커미션을 받는다. 이런 팀이 이리저리 업소를 옮겨 다닌다. 가인(가명)이라는 여성은 한 연예인을 빼다 박은 듯 똑같아 깜짝 놀랐다. 그는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오는 길에 접촉사고가 나서 차를 수리해야겠다”며 투덜거렸다. 가인의 차는 아우디였다.

미희 씨를 포함해 대기실에서 본 네 명의 여성이 똑같이 들고 있던 소지품은 ‘휴대전화’와 ‘담배’였다. 이들은 1시간 동안 5분 간격으로 걸려 오는 손님의 전화를 받고 깔깔거렸으며, 오른손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를 끼워 들고 있었다. ‘돈’이라는 욕망을 좇아 불나방처럼 살아가는 여성들. 대기실 방안을 가득 메웠던 담배 연기와 향수 냄새 속에 새벽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이 오버랩됐다.

글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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