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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미국서 가장 성장성 높은 中企에 뽑힌 유리시스템 김종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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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하이테크.중소기업.고속성장.억만장자-.요즘의 한국경제가 갈구하는 창업.성공의 모델이자 현재의 미국경제를 받치고 있는 원동력의 전형이다.이에 딱 들어맞는 성공담을 미국땅에서 한 한국인이 이뤄냈다.아니,엄밀하게 말하면 이민의 나라인 미국에서'코리안 아메리칸'이 일궈낸'아메리칸 드림'이다.개인과 국가가 다 함께 향유하는 이런 성공이 왜 한국인에 의해 한국에서 이뤄지지 않고 한국계 미국인에 의해 미국에서 성취될까.5월26일자 미 비즈니스위크지 표지 인물로 등장했던 정 킴(Jeong Kim)이 그같은'답답한 자부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다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스스로의 삶을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사람이다(본지 5월18일자 9면 참조).한국 이름 김종훈(金鍾勳).만 36세.유리 시스템 회장.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한'지난 3년간 전 미국을 통틀어 가장 빨리 성장한 중소기업'의 창업 오너.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주 랜햄에 있는 사무실에서 金회장을 만난 것은 그가 가족들과 함께 떠났던 1주일간의 스페인.포르투갈 휴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이었다.

金회장은 중3때인 75년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온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이민 22년만인 올 2월,그는 자신이 5년전에 창업한 유리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공개하며'가장 빠른 성장성'으로 전 미국의 중소기업들을 석권했다.

비동기식교환방식(ATM.동화상데이터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송수신하는

교환기)스위치를 만들어내는 그의 회사는 최근 3년간 매년 약 4배씩 외형을

키우면서 수익도 해마다 4배 이상씩 늘려왔다.

최근 유리시스템의 주가는 16~19달러선.총 발행주식이 2천4백60만주고,그중

1천5백만주가 金회장 몫이니 요즘 회사가치는 약 4억~4억7천만달러,그의

주식가치는 2억4천만~2억9천만달러쯤 되는 셈이다.

그는 매우 직선적이고 진지하다.

“오늘 처음 듣는 가장 진지한 질문입니다.” 4시간 가까이 걸린 인터뷰

막판에 그는 묻는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처음 이민와 고생한 이야기도,학교.군대에서 잠 안자며 노력한

이야기도,창업해 성공한 이야기도 다 시시한 듯 마지못해 풀어놓는 기색이

역력하던 그는'한국의 하이테크'대목에 가서야“진지하다”며 비로소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어든 영어든 아무 불편이 없는 金회장이지만 그의 영어는 아직도 구르지

않는다.

한국 악센트가 강하게 남아있는 그의 영어는 미국에서 22년 산 사람치곤

매우 투박하다.

“우리 식구중 내가 영어를 제일 못합니다.이쪽으론 능력이 없는 것도 같지만

글쎄,이것도 마음먹고 고치려 하면 못할 것도 없지요.” 그는 지금까지

마음먹고 하려했던 것은 다 해냈다.그것도 한번에 두세가지 일을 매우 빨리.

고교시절,그는 학업과 경제적 독립을 같이 해냈다.낮엔 공부와 함께 중장거리

달리기.장대높이뛰기등의 운동을 하고 밤엔 세븐일레븐등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다.그러고도 한 학기 일찍 졸업하면서 존스홉킨스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3년만에 끝낸 대학생활 도중에도 MIT대 입학만큼이나 어렵다는 해군

핵추진장교후보생(NUPOC)프로그램에 지원해 합격,졸업후 군복무를

조건으로 2년동안 월1천여달러씩'월급'을 받고 다녔다.뿐만 아니라 1학년때

중국계 친구 두명이 설립한 컴퓨터장비 개발업체에 파트너로 합류,컬러

디스플레이 시스템등을 개발하며 백만장자의 문턱에까지 갔다.

“인텔의 프로세서칩이 처음 나올 때였으니까,그때부터 하려고 했으면 벌써

성공했을 겁니다.한때는 약30명까지 고용했을 만큼 회사가 커지기도

했어요.그러나 저는 졸업후 군대를 가야 했고,그보다'나는 돈 다 벌었다.이제

곧 백만장자가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탓에 벌었던 돈을 도로 다 회사에

집어넣은 채 회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해군에 입대해서도 그의 숨가쁜

성취는 지속됐다.

핵잠수함 승선장교를 길러내기 위한 미 해군의 21개월짜리

4단계'지옥코스'를 그는 하루에 16~18시간씩 공부하며 패스했다.

“제가 존경하는 지미 카터 전대통령도 해사를 졸업한 후 세번째 코스에서

탈락했습니다.지금도 약30%는 도중에 쫓겨납니다.4년에 공부할 것을

21개월에 마치는 아주 고된 과정입니다.” 84년부터 3년간 핵잠수함을 탈

때가 유일하게 별 도리없이 한가지 일만 해야했을 때였다.

그러나 잠수함근무를 마친 후 국방부산하 핵무기연구소에서 약2년간

복무하며 그는 다시 여러가지 일을 벌이기 시작,결혼해 가정을 꾸미는 한편

존스홉킨스대에 등록해 테크니컬 매니지먼트(기술 관리)석사를 땄다.

89년 제대하면서는 더욱 바빠졌다.엔지니어링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그는'사업하려니 박사학위가 필요해' 3년안에 학위를 딸 생각으로

메릴랜드대에 진학,2년만에 엔지니어링박사가 됐다.

“계획대로 내 자신의 기업을 창업,92년 2월6일 등록을 하며 다섯가지 목표를

세웠고 모두 목표대로 됐습니다.” 다섯가지 목표는 우선 컨설팅을 시작해

자본을 모은 후 커뮤니케이션 제품생산에 착수하며 군수분야에 먼저 진출한

다음 상업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5년안에 기업을 공개해 2천만달러

이상을 번다는 것이었다.

유리시스템이 공개된 것은 올 2월5일.회사등록후 정확하게 만5년이 되는

날이었다.윌리엄 페리 전국방장관등'유리시스템에 부족한 점을 조언해줄 수

있는'외부 명사들도 이사로 모셔왔다.

金회장이 1인 2역.3역을 하며 단숨에 달려온 22년의 이민생활은 이처럼

압축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정작 본인에게는 별로'진지한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하루도 틀리지 않는 5년만에 목표를 달성했지만 별로

기쁘거나 감개무량하지는 않습니다.이제부터 걱정할게 많기

때문입니다.진짜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와

나눈'진지한'대화를 요약해보자. -미국의 하이테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외국계 미국인들이 많다.특히 중국계들은 대만.중국과의'차이나 네트워크'를

잘 형성해가고 있는데.“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한국

하이테크 산업과의 코리아 네트워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오늘 처음

듣는 가장 진지한 질문이다.자본이 모자란다,기술이 모자란다고들 하는데

항상 무엇이 모자라는 것이 거꾸로 도움이 된다.그럴 때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온다.한국에서도 뭐가 모자란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돈.기술.네트워크가 다 있으면 처음엔 쉬울지 모르나 크게

못된다.그리고….” -잠깐,한국 기업들과의 비즈니스 경험은. 이

대목에서부터 金회장은 정말 듣는 쪽으로선'심각한'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95년 우리는 직원 10여명에 사무실도 초라했으나 테크놀로지는 이미

개발해놓고 있었다.그때 한국 굴지의 H그룹 전자사업담당 미주 총책임자가

찾아왔다.당시 도와달라고 했으면 꼭 돈을 따지기보다 얼마든지 도와주고

싶었다.그러나 만나봤더니 자기네가 더 크다고 하는 생각,초라하고 조그마한

기업을 어떻게 믿느냐는 불신등에 얽매여 이해를 못하는 것은 물론 관심도

별로 없었다.고작 한다는 소리가 서류상으로 테크놀로지 개발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이었다.근래에는 S그룹쪽에서'당신네가 원한다면 우리

브랜드로 당신네 상품을 팔아줄 수도 있다'는 식의 어이없는 제의가 왔다.”

그가 한국기업들과 접촉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그러나 그의 한국

대기업들에 대한 평가는 단호하다.

“그들은 상대방의 사무실도 좋고 사람도 많아야지,초라한 상태에서의

테크놀로지 포텐셜을 초기 단계에서 잡아채질 못한다.뭘 눈으로 봐야 그때

가서 이거로구나 한다.외형은 아무 상관없는데….그때 H그룹이 우리 기술을

잡았으면 지금쯤 세계시장을 잡았을 것이다.” 당시 유리시스템의

테크놀로지는 결국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 AT&T가 가져갔다.그 과정이 더

기막히다.

“H그룹 사람을 만나고 얼마후 이번엔 우리가 뉴저지의 AT&T 벨연구소를

찾아갔다.우리 기술을 설명하는데 처음엔 실무자급이 나오더니 자기네

수준을 넘는다며 다음단계의'고수'들을 불러왔다.그들도 자기들보다 우리가

많이 안다며 더 수준높은 전문가들을 불러왔다.이런 식으로 다섯번째 가서는

AT&T의 최고 전문가 한사람과 마주 앉았다.그는 설명을 듣더니'벨에는 이런

테크놀로지가 없고,이들의 테크놀로지는 우리 것보다 낫다'며 그 자리에서

1백50만달러를 바로 송금하겠다고 약속했다.AT&T가 6개월간 우리기술을

정밀평가하는 동안 우리가 다른 회사로 테크놀로지를 들고가지 않는다는

대가였다.이는 총1천2백만달러 짜리 계약의 일부였고 이렇게 해서 제품

개발.생산자금을 해결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두세달이었다.” 그에게는

시시하겠지만 듣는 이에겐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옮기자. 왜

해군에 들어갈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젊은 생각에 미국이란 나라에 뭔가 갚아주고 싶었습니다.열심히 하니까

아무 것 없어도 대학에 갈 수 있었고,물론 차별도 많았지만 외국인도 노력만

하면 기회를 주는 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이런 나라를 젊었을 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고교때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89년 박사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1주일에 1백20~1백30시간을 일하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지난해까지도 계속됐고,그 때문에 한동안 상대방과 멀쩡히

이야기하다 갑자기 잠에 빠지곤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젠 그런 문제들이 없다.지난해말부터 처음으로 하루 7~8시간씩 자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동안은 운동도 전혀 못하다가 요즘은 라켓볼도 종종 친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한번 진지해졌다.

“한국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해주십시오.우리 오늘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않습니까.저보다 똑똑한 한국사람들은 많이 봤습니다.누구든

하려고 마음 먹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그리고 제 아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는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약력>

75년 중3때 가족과 이민존스홉킨스大 졸업美해군 핵추진 장교로

복무메릴랜드大서 박사 학위92년 유리시스템 창업올5월 美비즈니스위크誌

표지인물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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