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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거취 놓고 부심하는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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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사건이 여권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에선 조기 수습을 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시점이 안 좋다. 1·19 개각을 계기로 집권 2년차의 국정 운영에 탄력을 주기로 한 상황에서 터진 대형 악재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선 정치·경제·사회적 여파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당장 민심이 전국적으로 섞이는 설 연휴를 앞두고 있다. 악화된 여론은 2월로 미뤄 둔 입법 전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실물경제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그 때문에 여권에선 이번 사건이 더 큰 사건의 도화선이 되지 않도록 설 전에 조기 수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그래선지 대응도 재빨라지고 있다. 당과 청와대의 수뇌부들이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불의의 참사가 나 국민 모두를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해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했다. 한승수 총리는 부상자들이 입원한 경찰병원과 순천향대 병원을 직접 찾아 위로했다.

여권은 일단 ‘선(先)진상 규명-후(後)책임자 문책’의 원칙을 정했다. 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아직은 인사 문제를 말할 때가 아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나라당의 기류도 비슷했다. 당 진상 조사단에선 법무부와 경찰청에 진상 조사를 서두르도록 촉구했다.

그 대신 여권은 사건의 성격을 ‘도심 테러’로 규정한 뒤 시위의 불법성을 부각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철거민들과 별개로 화염병과 시너 등을 동원한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란 측면이 간과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여권 내에서도 시기의 문제일 뿐 과잉 진압 책임까지 덮어 두자는 기류는 아니다. 박 대표는 “책임 추궁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며 “먼저 진상이 밝혀져야 책임을 물을 거 아니냐”고 설명했다.

◆박희태-홍준표의 엇박자=당 일각에선 일단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조기 수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내부 갈등 조짐도 보이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김 청장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기관장은 결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월 임시국회가 ‘김석기 국회’가 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사에서 열린 당 대책회의에 불참했다. 당 대표실 관계자는 “사망사건 대책 논의를 위한 임시 회의여서 참석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 다른 당직자는 “당의 공식 입장과 달리 홍 원내대표가 책임자 조기 문책을 주장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정애·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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