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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홍콩 행정장관 ‘보타이’의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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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는 항상 나비넥타이를 고집한다. 키는 1m60cm를 조금 넘는다. 65세의 나이지만 얼굴이 동안(童顔)이어서 50대나 40대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조용하지만 영리하고 현명하다. 그런 그에게 홍콩 사람들은 ‘보타이((煲呔·bow tie의 음역, 나비넥타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그의 진짜 이름은 도널드 창(曾蔭權)이다. 현재 홍콩 행정장관(총리 격)이다. 그에겐 독특한 리더십이 있다. 실용정신이 핵심이다.

20년 전 그는 행정국장이었다. 어느 날 정부의 정책자문관이었던 영국 외교관 스티븐 브래들리(지난해까지 그는 주홍콩 영국 총영사였다)가 그에게 보타이를 선물했다. 일주일 정도 매고 출근했더니 편하고 좋았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보타이를 맸다.

주위에서 귀엽다고 놀렸지만 웃어넘겼다. 2007년 홍콩의 중국 반환 10주년 행사 참석차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홍콩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보타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 기자가 이유를 물었더니 “편하고 거추장스럽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실용적 사고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용에는 일관성과 배짱도 배어 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며칠 앞두고 영국 정부가 갑자기 그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주겠다고 했다. 공직생활 30년의 공적을 인정해 주는 훈장이라 대단한 명예였다. 그러나 며칠 뒤면 홍콩은 영국이 아닌 중국 세상이 되는 판이라 선뜻 받아들이기가 껄끄러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덥석 훈장을 받았다. 며칠 뒤에는 찰스 왕세자로부터 작위까지 받았다.

이 정도면 중국 정부의 괘씸죄(?)는 각오했다는 얘기다. 며칠 후 그는 영문이름 표기 방식으로 이름 앞에 ‘Sir’ 대신 ‘Honorable’이라는 경칭을 고집했다. 영국 작위를 받으면 ‘Sir’를 사용해야 하나 중국 정부의 고위관리로 남고 싶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절묘한 타협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그는 재정사장(경제부총리 격)이었다. 보아 하니 외국 투기자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증시로 몰려들어 주가를 갖고 놀았다. 미 달러화에 고정된 홍콩달러 환율도 들썩거렸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기자본의 시장 유입을 차단해 버렸다. 서방 언론의 공격이 시작됐다. 홍콩이 신자유주의의 근간인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포기했다고 연일 대포를 쐈다. 야권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국제 신뢰가 무너진다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러나 그는 되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망하면 그들(국제 투기자본)이 우릴 먹여 살린다던가.” 위기 때는 교과서를 덮어야 한다는 게 그의 경제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실용이 현실에 굳건하게 끈을 대고 있다고 믿고있다.

며칠 전 그는 입법회의(국회 격)에서 행정장관 직선제(현재는 간선제) 도입 등 정치개혁 논의를 잠시 중단하고 금융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주화 세력 의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의 발언을 중단시켰고, 언론은 경제를 핑계 삼아 민주화를 늦추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기죽지 않았다. “어떤 정책도 시민들의 주름살을 펴는 것에 우선할 수 없다.” 당장 경제가 망가지게 생겼는데 한가하게 정치적 쟁점으로 힘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다. 그의 실용은 정책의 앞과 뒤를 제대로 분별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그에게도 공직생활의 위기가 있었다. 친척이 정부 토지를 헐값에 이용하는 등 친인척 비리도 있었다. 잉어를 좋아해 관저에 정부 예산으로 잉어장을 만들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홍콩은 그의 능력과 경륜을 아껴 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의 실용은 결국 홍콩의 실용문화가 키웠다. 홍콩이 중국과 더불어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일 것이다.

최형규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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