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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새 내각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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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읽고 싶어 했던 책이 있었다. 12세기 남송의 홍매(洪邁)가 역사·문학·철학·예술 등 제 분야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평한 『용재수필』이다. 이 책에는 유독 인재 등용과 관련된 조언이 많다. 그만큼 경세지략(經世之略)의 핵심에 인재 등용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 “현재(賢才)를 아는 자만이 현재(現在)를 안다”는 대목이 있다. 다시 말해 적재적소에 현명한 사람을 쓰는 것이 현재의 난국을 해소할 수 있는 첩경이라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장관급 4명을 포함한 개각을 단행했다. 과연 이번 개각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현재(賢才)의 등용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명박 정부의 집권 2년 차 개각은 역대 정권에서 반복됐던 유혹과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 역대 정권이 집권 2년차에 단행한 개각을 보면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대통령 직할 통치 체제 구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10개월 만에 단행한 개각에서 자신의 최측근 최형우 의원을 내무부 장관, 이원종 공보처 차관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17개 부처 중 14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하면서 자신의 복심이라 할 수 있는 박지원 수석을 문광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뒤이어 한광옥 전 의원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탄핵 복귀 이후 70여 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모자이크식’ 정치 개각을 단행하면서 정동영·김근태·천정배 의원 등 차기 대권 주자군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동시에 당정분리 원칙을 내세워 집권당을 무기력화시켰고, 청와대엔 386 측근을 포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를 보면 외형상 ‘강만수 경제팀’을 경질한 ‘경제 개각’이지만, 핵심은 권력기관과 총리실·기획재정·교육 등 국정을 이끌 요소에 실세 측근들을 전면 배치한 것이다. 대통령의 뜻을 잘 아는 측근 인사들을 중용함으로써 국정 철학과 통치 의지를 뒷받침하고, 국정 과제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보듯이 국정 2년차를 맞아 친위세력을 배치해 강력한 직할 체제를 구축한 결과는 기대와 달리 정반대로 나타났다. 정부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락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 친정 체제가 외형상 조직 장악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대통령을 국민과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이 늘고, 정확한 정보가 물 흐르듯 대통령에게 보고되며 당·정·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逆)시너지 현상’이 나타났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중요한 정보가 차단되고, 측근 정치가 기승을 부리며, 내각과 집권당은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결국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정권들이 겪었던 ‘집권 2년차 개각’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핵심 측근들에 의한 ‘권력 사유화’ 논쟁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 핵심 실세들에 대해서는 가혹할 만큼 철저한 관리를 통해 비정상적인 국정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 실세들이 호가호위 기미만 보여도 추상 같은 응징으로 통치의 무서움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팀에 기대가 높다. ‘윤증현 경제팀’은 ‘강만수 경제팀’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내부 조직 장악과 함께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경제 트로이카(기획재정부 장관·금융위원장·경제수석)가 한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긴밀한 협력 체제를 갖춰야 한다. 민감한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신속·과감하게 대응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