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10년만에 다시부른 '시인의 마을' - 정태춘.박은옥 서울공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정태춘.박은옥이 10년만에 처음으로 서울의 청중앞에 함께 섰다.지난 16일부터 3일동안 열린 이 무대는 그들이 흔히 서온 집회장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인들을 수용하는 소극장(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의식화된 공중이 아니라 감정에 울고 웃는 대중과는 정말 오랜만의 만남인 셈이다.

두 사람은'시인의 마을''북한강에서''윙윙윙''촛불'등을 10년만에 처음 불렀다.80년대 초중반'정태춘 박은옥 노래마당'을 차리고 전국의 소극장을 돌아다니던 그들은 집회장으로 무대를 옮긴 87년부터 더 이상 이 노래들을 부르지 않았다.

정태춘은 이 노래들이 당시 시대의 엄중성을 거역하는 나약한 노래라며 부끄러워했다.이 '자진 금지곡'들은'누렁송아지''아!대한민국'등 저항가수 정태춘의 노래와는 자연 대척점에 서게 됐다.무엇보다 정태춘 자신이 집회장에서'시인의 마을'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게되면“집에서 판으로 들어라”고 일갈해 왔다.그가 그 금지곡들을 스스로'해금'했다.이 노래들은 차분하게 불려졌다.들을 사람만 들으라는 날선 대결의식도,후일담만 되씹는 무력한 패배의식도 없는 질박한 목소리다.

희망과 체념을 한데 끌어안은 듯한 한차원 넓어진 목소리다.불의 시대였던 80년대,재만 남았던 90년대 초중반을 모두 견뎌내고 나름의 깨달음 앞에 선 사람만의 목소리다.이번 무대의 힘은 박은옥이 부른 신곡'5.18'에서 잘 드러났다.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꽃잎같은 주검과 훈장/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오…” 이제 더이상 화제도,상품도 되지않는 5.18을 굳이 낮은 목소리로 되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어정쩡한 청산주의속에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하지만 분명한 파문을 일으킨다.정치적 해결만으론 사라지지 않는 깊은 앙금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시각은 둘이 '금지곡'시절 일궜던 작고 아름다운 서정의 동산에서 발원한 것이 분명하다.이들의 공연은 그 잊혀졌던 발원지를 대중에게 되찾아준 점에서 무척 소중한 무대였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