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상철의 중국산책]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겠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잘하고 볼 일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영어 좀 하고, 글 좀 쓸 줄 아는 기자 모시기에 한창이란다.
지난 주 중국 당국이 450억 위안(약 9조원) 들여
국영 언론사의 글로벌 역량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는 보도 이후다.

주택 제공에 연봉 30만 위안(약 6000만원).
영어 기자 스카우트를 위해 중국 언론이 내걸고 있다는 조건이다.
연봉 6000만원이 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양반들도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 1인당 국민소득을 약 2만 위안으로 보았을 때
이의 15배에 해당하는 연봉이라고 생각한다면,
즉 한국이 바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라고 할 때,
그에 15배인 30만 달러(약 3억9000만원)의 위력을 가지는 돈이라고 하면,
중국에서 연봉 30만 위안이 갖는 파워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중국 언론이 이렇게 영어 미디어 인재 모시기에 호들갑일까.
중국 당국이 추진 중인 중국 미디어 글로벌 역량 강화의 요체는 다음 4가지다.

첫째, 신화사 강화.
현재 약 100개의 해외 분사를 186개로 확대한다.
사실상 지구촌에서 발생하는 모든 뉴스를 커버하겠다는 야심이다.
또 아시아를 베이스로 24시간 국제뉴스를 전하는 방송국을 개설한다.
중국판 CNN, 중국판 알자지라 방송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둘째, 인민일보 강화.
인민일보 산하에 있는 환구시보가 5월부터 영문판을 발간한다.
환구시보엔 인민일보 해외주재 특파원들이 전하는 글로벌 뉴스가 주로 실린다.

세째, 중국신문주간 강화.
중국신문주간이 올해부터 미국에서 영문판 주간지를 낸다.
중국신문주간은 중국 제2의 통신사인 중국신문사가 내는 시사 주간지다.

네째, 중국중앙방송(CCTV) 강화.
기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4개국 언어 방송에
올해부터는 아랍어와 러시아어 방송 채널을 도입한다.

이같은 중국 당국의 계획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서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홍보나 이미지 개선,
또는 중국 미디어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라는 분석이 많다.

그리고 이런 계획이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주로 서방 언론들이 냉소적이다.
언론의 자유가 공산당에 통제되는 상황에서
즉 미디어의 가장 큰 경쟁력인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그런 중국 언론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며 코웃음 치는 것이다.
비록 중국 당국이 홍콩의 피닉스TV 보다
더 유연한 편집권을 보장해 주겠다고 말을 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또 신화사가 만들겠다는 24시간 국제뉴스 방송이나
환구시보가 만드는 영문판 신문이 중국 처음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CCTV에는 이미 24시간 뉴스 방송과, 영어 방송이 있다.
또 China Daily라는 영어 신문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중국 당국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일을 추진할까.
천만에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기존의 영자신문과 국제뉴스 방송은 독점 체제다.
여기에 경쟁을 도입한다는 측면이 있다.
마치 1990년대 후반 주룽지 총리가 국유기업의 독점 폐해를
깨부수기 위해 WTO 가입을 강력하게 밀어 부쳤듯이 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언론의 자유'가 제약되는
중국의 미디어가 과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에 대해선
세심한 관찰이 필요할 것 같다.

만일 중국 신화사의 24시간 국제뉴스나
환구시보와 중국신문주간의 영문판 신문, 주간지 등이
현재와 같은 보도 행태를 유지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통전(統戰)'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공산당 아닌가.
어떻게 하든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작전'을 펼 것이 예상된다.
이 경우 '중국인의 시각에서 보는 세계 시사'가 꼭 실패할 것 만 같지는 않다.

그 동안 국제 문제를 강력한 '서방 미디어의 눈'으로 봐야 만 했던,
그래서 그런 굴곡된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던 지난한 노력이
아시아 등 기타 지역에서 이미 적지 않게 벌어지지 않았던가 말이다.

'중국인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사뭇 신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성패는 '공산당'이라는 '냄새'를 얼마나 지우느냐에 달릴 것 같다.


유상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