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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길 따라, 희망 기관차는 출발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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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베드퍼드에 있는 한 제조업체를 방문해 보안용 안경을 쓴 채 활짝 웃고 있다. 베드퍼드 AP=연합뉴스

오바마가 탄 희망의 기차가 17일 필라델피아를 떠났다. 이 기차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워싱턴DC에 도착한다. 링컨이 기차를 타고 고향 스프링필드를 출발해 워싱턴에 입성한 것을 본뜬 것이다. 중앙SUNDAY는 필라델피아 현장에서 오바마를 태운 ‘희망 기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있을 취임식을 사흘 앞두고 17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148년 전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이 기차를 타고 스프링필드(일리노이주)를 출발해 워싱턴DC의 취임식에 참석한 것을 본뜬 것이다. 미국 경제가 어렵고 국가통합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오바마는 ‘링컨 따라 하기’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재건 정책, 존 F 케네디의 패기를 추구하고 있다. 링컨의 ‘가슴’, 루스벨트의 ‘두뇌’, 케네디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오바마를 보면서 미국의 새 시대를 예감한다.

오바마 시대를 상징하는 ‘담대한 희망의 열차’가 17일 낮(현지시간) 필라델피아∼워싱턴 구간 225㎞를 달렸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가족과 함께 나타나 ‘보통 사람’ 40명과 함께 필라델피아 서티스 스트리트역을 떠났다. 열차는 미국의 위상을 되찾아 달라는 미국인들의 염원을 안고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오바마는 역(驛) 로비와 맞닿은 ‘노스 웨이팅룸’에서 출정식을 했다. 우윳빛 대리석 벽에는 3개의 커다란 성조기가 걸려 장엄한 느낌을 더했다. 이 행사에는 40명의 동승객과 지역 정치인 등 초대받은 250명만 참석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희망과 변화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취지로 연설했다. 오바마의 임기는 20일 정오에 개시된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날 의회를 향해 자신이 마련한 825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계획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올해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최대한 빨리 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위트니스’의 무대였다는 역사(驛舍) 로비에는 먼발치에서라도 오바마를 보려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오바마 취임 행사의 출발지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륙회의가 열렸던 유서 깊은 필라델피아로 결정된 사실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온 래리 스티어는 “필라델피아에서 오바마의 취임 여행이 시작된다는 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가 리무진도 제트기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타는 열차로 간다고 해 크게 감동했다”고 덧붙였다.

열차는 먼저 조셉 바이든 부통령 가족을 태우기 위해 윌밍턴에 들른 뒤 볼티모어를 거쳐 이날 오후 워싱턴에 도착했다. 오바마가 가장 존경하는 링컨이 취임식 때 밟았던 여정 그대로다. 그는 필라델피아부터 워싱턴으로 가는 도중 열차가 멈출 때마다 몰려나온 인파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짤막한 연설을 했다. 이른바 ‘휘슬 스톱(whistle stop)’ 여행이다. 그는 공화·민주당의 정쟁, 이념 갈등, 종교 대립 등으로 갈라진 미국 사회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을 위한, 보통 사람들에 의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는 최근 ‘열린 정치’와 통합을 다짐해왔다. 특히 필라델피아∼워싱턴 간 열차여행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는 보통 사람들을 향한 ‘열린 정치’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14일 “이번 취임식은 내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결하자”고 말했다.

열차 여행의 동행자 면면을 보면 오바마의 열린 정치, 풀뿌리 정치의 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바마는 자기와 함께 역사적 여행에 참여할 이들을 직접 골랐다고 한다. 선택 기준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을 해낸 보통 사람이었다. 여기에 자신 또는 바이든 부통령에게 실질적인 지식을 주든, 일깨움을 주든, 어떤 형태로든 구체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골랐다.

예컨대 미 언론에 소개된 아이오와 출신 랜디 웨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십 년간 공화당을 지지했던 랜디는 아내 베스 덕택에 오바마와 슬픈 인연을 맺었다. 베스는 젊은 오바마의 신념에 감동해 2년 전부터 오바마 진영의 자원봉사자로 뛰었다. 그러던 중 부부에게 비극이 닥쳤다. 남편 랜디는 전립선암, 아내 베스는 췌장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베스는 지난해 10월 숨지기 몇 시간 전 침상에서 부재자투표를 통해 오바마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랜디 역시 오바마의 열성 지지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이다.

이런 사연을 들은 오바마는 랜디를 동승객으로 초청했다. 그뿐이 아니다. 오바마 당선을 위해 뛴 역사학 교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참전용사, 노동운동가 등 보통 사람들이 워싱턴행 열차에 탔다. 취임준비위에선 이들 중 적임자를 골라 오바마의 연설에 앞서 소개말을 하도록 안배했다.

열차가 멈추는 윌밍턴·볼티모어 역에선 일반 시민에게도 참여 기회가 주어졌다. 취임준비위는 이들에게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줄 통조림을 한 통씩 가져와 달라고 당부했다. 통조림은 자선단체에 전달된다. 취임식 전날이자 마틴 루서 킹 기념일인 19일엔 전국에서 다양한 자원봉사 행사가 펼쳐진다. 참여와 통합의 장(場)이다.

오바마의 이런 정치철학은 취임 후 모든 정책에 투영될 게 틀림없다. 경제위기 타개에도 마찬가지다. 조지 W 부시 시대엔 대기업·부유층 감세를 통해 경제를 진작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오바마는 중산층 이하의 실질소득을 높여 경기를 살리려고 한다. 그 대신 부시가 없애려던 상속세를 존속시킨다. 부시와 목표는 같지만 방식이 다른 것이다.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된 재닛 나폴리타노가 15일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불법 취업 단속에 대한 방향 전환은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으려는 오바마 정권의 기본 노선을 잘 보여 준다. 일터를 급습해 불법 이민자를 잡아들이지 않고 불법 고용주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 용의자들을 감금해 온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는 방침은 인권 존중과 함께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 출신이면 일단 위험인물로 분류하려는 부시 정권의 경직된 틀을 깨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단일 패권을 휘두르던 미국의 이미지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열차 여행은 경호상 엄청난 모험이었다. 225㎞의 철로 주변 건물에서 얼마든지 오바마를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가 지나가는 다리·터널 등에 폭발물을 설치할 가능성도 있었다. 경호팀에서는 열차에 특수 장비를 장착해 외부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철로 주변 비행기·선박의 접근을 일절 금지했다.

필라델피아=남정호 특파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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