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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1만 도시, 녹색 일자리 9400개 만들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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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12면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프라이부르크 스타디움 지붕에는 태양광 시설이 설치돼 있다. 경기장을 밝히는 조명부터 선수들이 샤워할 때 쓰는 온수까지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한다. 프라이부르크시 제공

프라이부르크 기차역에 도착한 것은 지난해 12월 19일 저녁이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트램(전차) 역을 찾았다. 행인에게 “트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오른편 육교를 가리킨다. 육교 위에 올라가 보니 트램 선로가 깔려 있다. 자동판매기에 2유로를 넣고 티켓 한 장을 뽑았다.

독일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의 실험

트램으로 세 정거장을 가니 시 중심부인 베르톨츠브룬넨이다. 트램 선로가 동서남북으로 거미줄처럼 교차돼 있다. 그 위로 자전거가 쉴 새 없이 오간다. 뒤에 아이를 태운 자전거 트레일러도 눈에 띈다. 크고 작은 돌이 깔린 보도 옆을 ‘베히레(Behire)’라고 불리는 작은 수로가 달리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도심의 열섬 현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환경 수도의 비밀은 이것뿐일까.

비결 1: 이슈를 선점하라
다음 날 프라이부르크 시청을 찾았다. 40대 중반의 여성인 프란치스카 브라이어 환경국장과 마주 앉았다. 브라이어 국장에게 프라이부르크의 규모부터 물었다. 넓이 150㎢에 21만5000명(10만5000가구)이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소 도시 규모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인구가 늘고 있다. 고령 사회인 독일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환경산업이 전체 시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절대적이다. 1500개 기업에 9400개 일자리가 환경산업에서 새로 생겼다. 경제 기여액이 총 5억 유로(약 9000억원)에 달한다.”

-1만 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프라이부르크는 대학 도시에 불과했다. 이렇게 많은 일자리가 환경 분야에서 생기리라곤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다.”

-비결은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경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놓고 시와 시민·기업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다. 75년의 일이 좋은 계기가 됐다.”

‘75년의 일’이란 독일 정부가 프라이부르크 인근에 핵 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던 것을 가리킨다. 당시 녹색당이 대대적인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대학생 그룹과 반핵 운동가의 연대로 녹색 대안 운동이 움텄다. 이후 86년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시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핵 발전을 영구히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독일에선 처음으로 시청에 환경 부시장 제도를 도입한 프라이부르크는 ▶스모그·오존 오염 조기 경보 시스템 ▶살충제 금지 ▶쓰레기 재활용 ▶친환경 교통 등 획기적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환경이 범지구적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슈를 선점해온 것이다.

비결 2: 주력 산업에 집중 투자하라
프라이부르크의 주력 산업은 태양광 분야다. 81년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 연구소가 이 지역에 세워지면서 연관 기업들이 뒤따랐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유럽 최대의 태양광 연구기관으로 현재 500여 명의 연구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태양광 산업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만 1000개가 넘는다. 연 1800시간 이상의 일조량과 ㎡당 1117㎾의 복사열로 독일에서 가장 햇볕이 많이 드는 도시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정책적 노력과 계획적 경제 개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브라이어 국장은 설명했다.

태양광 등 환경산업에 프라이부르크시가 지원하는 보조금은 2002년 이후 120만 유로에 달한다. 지역 발전회사에서 받는 부담금의 10%를 재투입하는 것이다. 태양전지·광전지 판 제작업체, 태양광 주택 건설회사, 관련 컨설팅 업체뿐 아니라 발전기계 등 전통적 산업 분야까지 보조금을 지급한다. 태양광 발전 시설은 이제 축구 경기장과 시청 지붕, 학교, 교회, 개인 주택 등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풍력 발전도 활발하다. 산 중턱에 우뚝 솟은 높이 98m의 풍차 6개가 시 전력 소비의 1.9%, 5600가구분을 책임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을 합한 재생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5% 이상을 차지한다. 프라이부르크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2010년 12.5%, 2020년 20%로 높일 계획이다.

비결 3: 대표 상품을 개발하라
프라이부르크를 찾는 관광객 중 대다수는 시내 남쪽에 있는 보봉을 방문한다. 자동차 없이 사는 생태마을을 구현한다는 계획에 따라 97년 건설된 보봉은 프라이부르크의 환경 이미지를 크게 높이고 있다. 보봉에는 저에너지 주택(Low energy house)과 태양광 에너지 주택(Solar house) 등 다양한 대안 주택들이 세워져 있다. 세계 각국의 정부·지방자치단체·환경단체·언론 등에서 보봉과 태양광 연구시설을 찾는 발길이 늘자 시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전문 업체들이 생겨났다. 하루 프라이부르크 지역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600유로(100만원)에 이른다.

이러한 시찰 전문 업체를 비롯한 환경교육 분야에서만 7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브라이어 국장은 “세계 9개 시와 제휴를 하고 ‘녹색 도시’ 시스템을 전수하고 있다”며 “이탈리아에 조인트 회사를 설립해 유럽 최대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 중”이라고 했다. 또 환경산업 기술을 주고받는 ‘인터솔라(Intersolar)’ 박람회를 8년간 열었다. 연 1000개 이상의 전시 업체와 5만3000명의 방문객을 기록했다. 국제 태양광 연구 동향을 주제로 한 ‘태양 정상회의(Solar summits)’도 개최하고 있다.

비결 4: 지속적인 시민 참여를 끌어내라
2007년 시 의회는 CO₂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줄이기로 결의했다. 시민 참여 없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CO₂다이어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시민 개개인이 배출하는 CO₂양과 그에 따른 처방을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에는 CO₂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CO₂Libri’ 행사를 할 예정이다. 현재 쓰레기 재활용률은 67.5%. 종이의 경우 80%에 달한다. 시 측은 직물 기저귀 사용과 재활용 쓰레기 수거, 퇴비 재활용 등에 대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시민들이 CO₂를 덜 배출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 구축도 계속되고 있다. 70년대까지는 자전거 도로가 거의 없었지만 현재는 410㎞에 이른다. 시내에 9000개의 자전거 주차시설이 설치돼 있다. 트램 선로를 확장하면서 인구의 65%가 트램으로 다닐 수 있는 지역에 살고 있다. ‘레기오 카르테(Regio-Karte)’로 불리는 환경정기권 하나만 있으면 한 달에 43유로(성인 기준)로 국철·트램·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70여 개의 환경단체는 시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녹색당 출신의 디터 잘로몬 현 시장은 “논란이 커지더라도 모든 정책을 공론에 부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브라이어 국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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