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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다윈·아인슈타인에겐 ‘소통의 기술’이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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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들녘, 388쪽, 1만5000원

 제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발견· 인식·고안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를 않을 테니 말이다. 독일 콘스탄츠 대학에서 과학사를 가르치는 지은이는 “그래서 과학자는 자신의 통찰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라고 지적한다.

과학 시간에 배우고 가르치는 내용들을 되새겨보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산과 염기를 합하면 염이 나온다’ ‘알코올은 물과 기름에 모두 녹는다’ ‘염색체는 유전정보를 DNA 형태로 보관한다’ ‘금속에 전기가 통하는 것은 전자가 자유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변화와 선택을 통해 이뤄진다’ 등등. 한결같이 지극히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명료한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길고 긴 여정이 있었다.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뤘다. 지은이는 자연선택을 발견한 다윈부터 상대성 이론을 설파한 아인슈타인까지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세상에 알려 소통하려고 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바꾼 과학적 성과들이 어떤 연유와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도 함께 다뤘다.

지은이는 “과학적 성과를 쉽게 정리해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성과 자체를 얻는 것만큼 힘들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과학계에서는 ‘케플러의 난제’라고 부른다. 400여 년 전,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천문학자 케플러가 자신의 통찰을 도저히 남들이 이해하게 설명할 수 없어 애를 먹었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대중과 과학자 간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1935년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고안한 사고실험의 모형도.

하지만, 과학자와 대중 간의 명확한 의사소통은 과학 지식의 전파와 활용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예로, 박테리아에는 세포벽이 있고, 바이러스에는 없다는 걸 알면 항생제가 왜 바이러스에 듣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세포벽이나 단백질 합성을 방해해 사멸시키거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질환에 항생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도 과학적 통찰을 비유적으로 쉽게 설명하는 사례에서 따왔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밀폐된 상자 속에 독극물이 든 통과 함께 있는 고양이의 생존 여부로 양자역학의 원리를 설명했다. 즉, 상자 안에는 1시간에 2분의 1 확률로 1개가 분해되는 알파 입자 가속기가 있는데, 만약 알파 입자가 방출되면 독극물 통이 깨지고 고양이는 죽는다. 그렇다면, 1시간 뒤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양자역학자 하이젠베르크가 내놓은 불확실성의 이론에 따르면 이 경우 고양이는 죽었으며 동시에 살아있는 상태여야 한다. 현실에서 이런 상태란 존재할 수 없다.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이용하여 이를 비꼰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고양이는 지금까지도 살아서 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아포리즘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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