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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녹색’포장 뜯어 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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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처음엔 흡족하지 않다가도 한 장, 두 장 연서(戀書)를 받다 보면 돌아설 수 있는 게 인간의 마음이자 연애의 법칙이다. 그런데 정부가 하루가 멀게 보내는 러브레터가 국민에게 큰 감명을 주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열심히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고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거룩하고 실질적인 어젠다를 던졌는데도 국민은 왜 열광하지 않는 것일까.

우선 녹색성장의 범위가 분명치 않다. 댐 건설을 포함한 상당수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그린뉴딜로 포장했다. 웬만한 첨단 기술 연구사업에도 ‘GT’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지방정부에선 거리 청소 같은 단순 사업이 녹색뉴딜로 분칠됐다. 포장지만 녹색이면 뭐 하나. 포장을 뜯자 녹색과 회색·흑색이 뒤섞인 물건이 나오는 것을 보며 국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메시지 전달 방식도 문제다. 총리·장관, 시장·군수가 돌아가며 “그린” “그린”을 외친다. 국민은 녹색성장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관(官)이 모두 나서 총력전을 펴는 상황이다.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전파되려면 ‘마사지’같이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 감각과 사고를 잘 어루만지며 상대방을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국민에게 보낸 것은 러브레터가 아니라 사무적이고 무차별적인 행정우편에 가깝다.

녹색성장 자체는 시대정신이라고 규정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녹색’을 내세웠고, 보수는 ‘성장’을 중시했다. 녹색과 성장은 화학적 결합은 물론이고 물리적 결합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온실가스의 증가와 자원 고갈, 환경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정신을 낳았다. 보수는 환경을 무시할 수 없고, 진보 역시 효율성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이미 독일·영국·네덜란드 등에선 1970년대 중반부터 녹색과 성장을 함께 고려한 산업·경제 구조를 짜 왔다. 국내에서 ‘녹색성장’은 몇 년 전 정래권 기후변화대사가 만든 말이다.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적절한 선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일본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세계 지도자들과 만나면서 녹색성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온실가스 감축과 녹색산업의 육성이 코앞에 닥친 문제임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8·15 기념사에서 녹색성장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녹색성장의 밑그림을 그려 내놓았다. 대통령의 구상대로 환경규제가 무역장벽이 되는 국제 질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일자리를 확 늘리겠다면 누가 반대하겠나.

불행하게도 그 밑그림이 진정한 녹색성장의 모습을 닮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많은 사람이 갖고 있다. 지금처럼 정부 사업에 마구 ‘녹색’ 라벨을 붙여 나가면 그린뉴딜은 정치 구호가 되고 정파적 대립을 부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정권에서 녹색성장의 파워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시대의 조류를 재빨리 타지 못해 선진화의 길목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제 막 스케치만 끝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문제가 있으면 ‘실시설계’ 단계에서 과감히 수정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출발은 ‘Green New Deal’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서 찾아도 좋을 듯싶다. ‘Green’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New’는 새로운 방식을, ‘Deal’은 나눔을 뜻한다. 그 의미대로 ‘지속 가능하면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새로운 사업’을 녹색성장의 범위에 포함시켜 정밀한 전략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 필요성을 전파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주요 시책에 녹색 ‘완장’을 채워 밀고 나간다는 느낌이 들면 소중한 시대가치 하나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규연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