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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심판받는 음주申告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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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숙주(申叔舟).구치관(具致寬)은 한명회(韓明澮)와 함께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세조(世祖)의 3중신(重臣)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세조 말년에는 이들 3인이 왕세자와 함께 국정을 주무를 정도로 세조의 신임이 두터웠다.신임이 두터웠던 만큼 왕과 자리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았다.특히 술을 좋아했던 세조는 비교적 술에 약했던 신숙주와 구치관에게 술 권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구치관이 우의정을 제수받은지 며칠후 이들 세사람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두 신하가 술잔을 제대로 비우려 하지 않자 세조는 한 꾀를 생각해내고 짐짓“신 정승!”하고 불렀다.신숙주가 “예-”길게 대답하자 세조는 대뜸 핀잔을 주었다.“새(新)정승을 불렀는데 왜 경이 대답하는가.벌주 한잔!”조금 있다가 이번엔 “구 정승!”하고 불렀다.구치관이“예-”대답하자 세조는“내가 옛(舊)정승을 불렀는데 왜 경이 대답하는가”하며 벌주를 내렸다.세조가 또“신 정승!”하고 불러 이번엔 구치관이 대답하자 성(姓)을 불렀다며 벌주,“구 정승!”하고 불렀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임금이 불렀는데 대답도 하지 않는다며 벌주 한잔씩….결국 이들 두 사람은 만취하고 말았다 한다.

윗사람이 술로써 아랫사람을 골탕먹이는 전형적인 방법이다.방식은 여러가지지만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이것이 관례처럼 돼 왔다.특히 조선조 내내 관계(官界)에 첫발을 내디딘 신참관리들에게 인사불성이 되도록 퍼마시게 해'뜨거운 맛'을 보여준 것은 대표적 악습이었다.상하관계를 허물없게 하는 술자리의 장점에서 비롯됐겠지만 신체적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쩐 일인지 현대사회에서도 그 풍습은 그대로 남아있다.대학에서도,직장에서도,군대에서도 마치 '통과의례'처럼 술이 세든 약하든 신참들을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하게 하고 좋아라 한다.건강을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음에까지 이른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발생한'충남대 신입생환영회 음주사망 사건'의 처리를 놓고 고심해온 검찰이 마침내 '사법처리'쪽으로 방침을 굳혔다고 한다.너무 각박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지만 더 이상의'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한번쯤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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