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으로부터 보석을 허가받아 석방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15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변 전 국장과 함께 기소된 박상배(64)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61) 산은캐피탈 대표 등 네 명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현대차그룹 측의 지시를 받아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김동훈(60)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도 판결이 파기됐다.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변 전 국장이 금품 로비를 받았다는 유죄 부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변 전 국장 등에게 돈을 줬다는 김동훈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원 수수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돈을 준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진술이 증거 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변 전 국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5000만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대법원은 이날 변 전 국장에게 보석을 허가하고 석방했다.
변 전 국장은 2001~2002년 김동훈 전 대표로부터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아주금속㈜ 및 위아㈜의 2000억원대의 채무가 잘 조정되게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혐의로 2006년 기소됐다. 김 전 대표는 현대차그룹 측으로부터 로비 자금 41억6000만원을 받아 20억2000만원을 뿌린 혐의를 받았다.
2심 법원은 김 전 대표의 금품 로비를 인정하면서 20억2000만원의 로비 자금 중 6억2000만원 부분만을 유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6억2000만원이 나머지 돈과 구분돼 로비 자금으로 쓰였다고 볼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돈을 줬다고 진술한 김 전 대표가 현대차그룹 측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로비 자금 명목으로 챙긴 행위로 인해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궁박한 처지인 점을 고려할 때 그 진술의 신빙성을 좀 더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변 전 국장의 변호인인 노영보 변호사는 “뇌물죄 수사 관행에 경종을 울린 대법원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신빙성 없는 진술만으로 수사를 하고 유죄를 인정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사회적 의미가 담긴 판결”이라고 말했다.
김승현·박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