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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중국신화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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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 이야기
김선자 지음, 아카넷, 352쪽, 1만4500원

“개미는 왜 허리가 잘록할까?”

“응, 그건 옛날에 선녀한테 장가들고 싶었던 한 청년이 하느님이 시키신 대로 귀리를 거둬들이다가, 개미가 먹어버린 귀리 한 알을 토하게 하느라 개미허리를 콱 눌렀기 때문이래.”

이것이 신화의 세계다. 신화는 이야기이며,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세상의 비밀이다. 그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이야기를 진실로 공유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 내려간 사람들의 삶의 결에 신화는 켜켜이 스며든다.

김선자의 『중국신화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책머리에서 독자들에게 신화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위해 ‘원시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갔던 인간들과 같은 마음의 눈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자 그러면 우리도 마음속의 먼지를 좀 털어내고 원시의 인간이 지녔던 상상력으로 이 책을 들여다보자.

책을 펼치면 하늘과 땅도 펼쳐진다. 그리고 자신의 두 팔로 하늘을 받쳐들고 구만 길 키가 자란 반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천지개벽에 이어서 인간의 탄생, 홍수와 치수, 중국 신들의 계보와 오방상제 이야기, 그리고 신들의 전쟁 이야기까지 이 책은 이렇게 기존 신화책에서 익히 보았음직한 굵직굵직한 신화의 테마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런 굵직한 테마들 사이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중국 문헌에 기록된 소위 ‘정통’ 신화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 민족의 풍부하고 생기 넘치는 신화들이다. 포악한 태양신에게 밟혀서 납작해진 거북이, 해님과 달님에게 받은 황금빗을 머리에 거꾸로 꽂아 생긴 수탉의 볏, 은빛 자작나무로 변한 흰구름 공주, 악한 신이 침을 퉤퉤 뱉어 망가뜨리는 바람에 인간의 겉과 속이 달라진 이야기 등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우리의 수많은 질문에 또 다른 진실을 속삭여 준다.

저자 특유의 아름다운 필치와 창의성이 한껏 발휘되면서 이런 신화들은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처럼 맛깔스레 재구성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잘 읽힌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그리 만만치 않다.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한 저자의 높은 식견도 그렇거니와, 한국신화·일본신화는 물론, 그리스 로마, 바빌로니아, 수메르, 이집트, 인도 신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많은 신화와 중국신화를 비교해 가며, 독자들로 하여금 좀더 넓은 눈으로 신화를 보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그 신화들이 지닌 ‘차이’에 주목하게 되며, 인간이 지닌 상상력과 삶의 다채로움에 새삼 눈뜨게 된다.

꼼꼼하게 배치된 풍성한 그림들, 깔끔하고 정성스러운 편집도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다소 전문적인 사항들은 책 뒷부분에 따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야기만 얼른 읽어 나가고 싶은 이들은 이런 설명들을 일단 무시하고 이야기 중심으로 책을 읽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중국신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중국신화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재미있고 괜찮은 책 없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퍽 난감해하곤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책들은 멀미가 날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아이들의 등마다 제우스의 만화 캐릭터 가방이 무수히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편식하지 말고 무조건 골고루 먹으라고 하기엔 다른 반찬이 너무도 적고 초라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출간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신화를 재미있게 읽고 싶은 이들에게, 혹은 그보다 조금 더 관심을 진전시키고 싶은 이들에게도 이 책은 고마운 선물이 될 것이다.

홍윤희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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