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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검찰의 잇따른 반발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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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김종빈 검찰총장(가운데)과 권재진 공안부장(오른쪽)·이동기 형사부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승식 기자

검찰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비롯해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과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최대 현안들이 검찰의 존재와 위상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일련의 조치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검찰권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판단한다. 일선 검사들은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사법제도 개혁'의 밑그림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며 청와대를 그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권의 존폐 논란을 부른 사개추위가 대통령 자문기구인 탓에 청와대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본다. 사개추위의 공동위원장은 한승헌 변호사와 이해찬 국무총리며, 기획추진단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총장 출신으로 현재 청와대 비서관인 김선수 변호사가 맡고 있다.

◆ "사개추위 방안은 수사권 무력화"=사개추위는 미국식 공판중심주의로 형사재판 시스템을 바꾸기로 하고, 2007년 시행을 목표로 형사소송법 등 관련법 개정초안을 마련했다.

검찰이 가장 반발하는 부분은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불인정 ▶공판 시 검찰의 피고인 신문제도 폐지 등이다. 검찰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뇌물 사건에서 돈을 받은 피의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 사실상 범죄 행위를 입증하기가 힘들어진다"며 반발한다. 검찰의 피의자 진술조서가 휴지조각이 된다는 얘기다. 사개추위의 초안대로 갈 경우 검찰은 현장 수사를 경찰에 맡긴 채 기소와 공소유지만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한다. 이는 검찰 수사권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사개추위는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검찰의 수사권이 과학적인 증거 수집의 방향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수사권 조정 결론"=쟁점은 검찰과 경찰의 위상을 지휘복종과 상명하복 관계로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95, 196조의 개정 여부다. 이 조항은 수사의 주체를 검사로 하고,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 협상에 나선 한 검사는 "15만여 명이나 되는 경찰이 정보.수사.치안까지 도맡아 일반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거대 권력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며 "검찰은 경찰의 견제장치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찰 측은 "일선 경찰이 전체 사건의 90%를 맡는 만큼 책임감 있게 수사를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검.경 양측이 추천한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는 다음달 2일 최종 회의에서 권고안을 마련한 뒤 이를 법무부 장관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다.

그러나 형소법 195, 196조에 대해서는 양측이 팽팽히 맞서 권고안 도출이 힘든 상태다. 당초 검.경은 "합의안을 못 내면 그동안 논의됐던 사항들이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정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지난 21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토론회 자리를 만들어 결론을 내겠다"고 말해 사실상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노 대통령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약속해 왔고, 그동안 '견제와 균형'이란 명분을 내걸고 경찰 측 입장을 지지해 왔다.

◆ "공수처, 반드시 필요"=검찰은 "공수처가 대통령 직속기구인 부방위에 설치되면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면서 반대한다. 검찰 내부에서는 "공직자 부패가 그동안 수사기관이 없어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면서 "공수처는 사실상 검사 등 법조계를 겨냥한 것으로 새로운 사정기구를 만드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의지는 강하다. 노 대통령은 최근 "공수처 신설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공수처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열린우리당은 "공수처는 대선 공약"이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새 검찰 총수 첫 시험대

김종빈 검찰총장이 취임(4월 4일)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검찰 총수로서의 리더십과 추진력을 평가받는 첫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의 수사권 폐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에 청와대가 경찰 측 입장을 지지하는 등 검찰 조직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송광수 전 검찰총장 때부터 논란이 돼 왔던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문제도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한 것이 알려지면서 검찰 구성원 전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김 총장이 27일 수도권 지역 검사장 회의를 긴급 소집했던 것도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검찰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이날 회의 참석자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한 뒤 일선 검사들을 포함한 전체 검사들의 의견 수렴을 지시했다고 한다.

만약 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 목표가 검찰 무력화에 있다면 "집단 사표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일선 검사들 사이에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뿐이다.

검사들의 불만이 잘못된 상황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면 총수로서 부하 검사들을 설득해 진정시키고, 검사들의 주장이 합리적일 경우 검사들의 대변자가 되는 것이다. 김 총장이 수도권 지역 검사장 회의에 이어 다음달 초 전국 검사장회의를 소집한 것은 그가 현재 검사들의 주장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 총장이 이처럼 검찰 조직의 위기에 대해 직접 챙기고 나섬에 따라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과 당분간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불가피하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견 간부는 "지금은 김 총장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김 총장이 지도력을 발휘해 이 고비를 잘 헤치고 나가면 검사들의 신망을 얻어 전임 송광수 총장처럼 조직 장악력이 높았던 총장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 "수사권 없는 검사는 존재 의미 없어" 일선 검사들 반발 확산

사개추위의 형사재판 개혁 방안에 검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사들 사이에선 수사권 무력화로 검사의 입지가 대폭 줄어들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28일 "변화도 좋고 개혁도 좋지만 '일단 바꿔놓고 보자'는 식으로 너무 서두르고 있다"며 "사개추위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정치적 의도에서 일정을 설정해 놓고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검.경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진전이 없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결단을 내리겠다는 청와대 발표에 대해서도 불만이 쏟아졌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대통령이 경찰의 편을 들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경찰은 물론 사개추위.청와대.법원 등 주변 집단으로부터 검찰이 왕따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장 검사들의 반응은 더 격앙돼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39)는 "수사권이 없는 검사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사표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연구관은 "사개추위의 방안은 말로는 공판중심주의라고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사이비 공판중심주의"라고 비난했다. 여러 나라의 제도를 뒤섞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도 "법원 위주의 기형적인 제도" 등 법원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 김종민 부장검사는 '검찰 독립의 칼로 법원전제주의의 분쇄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느 기관으로부터도 통제받지 않는 법원행정처라는 거대 관료조직을 보유한 대법원이 이제 검찰을 고사시켜 형사사법기능을 통제하겠다는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성토했다.

반면 사개추위 관계자는 "공판중심주의는 수사 관행의 틀을 인권 중심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1년6개월 동안 논의된 얘기를 왜 이제 꺼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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