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5.18 정신 새시대의 동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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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달 17일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대법원 확정 판결로 광주는'폭도의 도시'라는 17년 누명을 벗었고 그 뒤 처음 맞이하는 5.18행사는 국가기념일로 성대히 치르게 됐다.5.18민중항쟁 제17주년 행사위원회 위원장 명노근(明魯勤.64.전남대 영문학과)교수는 80년 해직교수 1호였다.문순태(文淳太.56.광주대 문예창작과)교수는 당시 신군부에 의해 붓이 꺾인 해직 언론인 출신.두 사람은 5.18정신의 승화를 주제로 대담했다. 편집자

▶문순태 교수=첫 5.18국가기념일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끄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17년만에 되찾은 역사적 정당성을 전국민에게 알리는 일에

앞장서시며 감회가 남다르셨겠습니다.

▶명노근 위원장=5.18기념행사추진위원회 일을 맡으며 새로운 5.18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고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았던 당사자들이

내란죄로 사법적 심판을 받게된 마당에 투쟁지향적인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한 출발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문=국가기념일 제정은 선언적 의미가 크게 담긴 것으로

생각합니다.광주시민들도 역사의 한 장을 매듭짓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같습니다.17일 열린 전야제 준비과정에서

예전과는 달리 일반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초점을 두는 것을 보며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명=그렇습니다.과거 5.18행사는 대부분 학생.노조원.농민운동가들이

주도했습니다.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모습을 탈피해 시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마당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야제에는 군악대.경찰악대까지 초청해 민주주의의 승리를 노래하는

팡파르까지 울리지 않았습니까.경찰이 참여하는 5.18행사는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었지요.소년합창단.시립교향악단도 참여하고 대형

멀티비전도 동원해 과거의 행사와는 전혀 다른,한마디로 축제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문=이러한 이 지역의 변화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알려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지난주 새로 단장된 5.18묘지를

둘러봤는데 전국에서 많은 참배객들이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아직도

5.18행사는 전국적인 행사가 되지 못하고 광주.전남지역에만 국한된

것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국가기념일 제정이 이뤄진 올해가 5.18의 의미를 전국민이 함께 나누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전국화'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명=5.18정신을 광주.호남지역을 넘어 전국민과 공유하는 문제의 핵심은

17년전 광주시민의 희생을 어떻게 역사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키느냐의

문제입니다.우선 이제는 5.18을 정치적 투쟁의 영역에서 학술적이고

역사적인 영역으로 옮겨와야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5.18의 역사성등을

학술적으로 자리매김하는 학술심포지엄등이 최근 활발히 열리고 있는

모습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문=학술적 연구와 더불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도 이제는 차분하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겠지요. 신묘역 이장과정에서 두개골이

파열되고 여러 곳에 총상을 입은 유골이 확인되었습니다.이를 둘러싸고 당시

내란군의 조준사격.확인사살등에 관한 논란이 다시 일어났습니다.늦은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5.18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차분히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명=그렇습니다.독일은 50년이상 계속해서 나치의 만행을 추적하고

있습니다.우리도 과학적인 탐구도 하고 학술적으로 조명해내야 합니다.곧

전남대 5.18연구소에서 5.18총서(總書)4권을 낼 예정입니다.

▶문=진상규명과 더불어 남은 과제중 하나는 5.18 정신을 문화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입니다.그동안 5.18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과 영화.연극등이

많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소재의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이제는 그동안의 성과를

가다듬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때 아닙니까.95년 처음 열린 광주

비엔날레의 경우 광주의 역사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올해부터는 5.18과 연계한 비엔날레 행사가 되어야 합니다.

▶명=동감입니다.5.18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문화행사는 관광상품도 될

것입니다.현재'성도(聖都)'로서의 광주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비엔날레도 광주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살리는

예술축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문=5.18의 전국화.세계화와 동시에 광주.전남 지역의 예술도

전국화.세계화되어야 합니다.그동안 이 지역의 역량있는 작가들이

시대정신과 역사적 소명이라는 명분속에 어려운 길을 걸어왔습니다.이들의

잠재력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문제도 중요한 과제중 하나일

것입니다.

▶명=그렇습니다.과거의 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희망을 위해 뛰어야

합니다.그렇기 위해서는 정부가 하루빨리 남아 있는 문제를 마무리해야

합니다.5.18희생자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문제가 그것입니다.희생자나

유족들은 4.19혁명에 준하는 유공자 대우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5.18이

4.19에 비해 역사적 의미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문=좀 이른 감은 있지만 21세기의 5.18에 대해서도 이제는 한번 생각할

때에 이른 것 같습니다.광주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이제는 정치논리에서 해방되어 구체적 삶의

문제를 논하는 시대로 전환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정치논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정치가 잘해 주어야겠지요.그동안 정치현실이 너무나도 이

지역 사람들의 기대에 못미쳤습니다.정치인들이 각성해 국민들이 관심을

안보여도 편안히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문=이 지역 정치인들도 각성 해야 합니다.5.18을 담보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는데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이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합니다.시민들도 정치적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져 환경이나 복지문제등

새로운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또 문화적 경직성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작가들이 사실주의 일변도의

작품세계에 매달린 것이 결과적으로 실험성이나 세계적 보편성 획득

실패라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명=그렇습니다.

▶문=5.18정신이 전국적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언론의 지적이

있습니다.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명=사실 그래서

광주시민이 먼저 모든 국민에게'사랑을 고백하자'는 시도가

있었습니다.5.18관련 단체들이 지역 화합과 대국민 화해를 선언하려 했던

것입니다.'평화선언'또는'광주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최근까지 준비해왔으나

일부 관계자들이 全.盧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의 구실로 사용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문=평화선언 이라는 획기적인 시도가 全.盧 두 전직대통령 조기사면

우려때문에 성사되지 못했군요.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사면논의를 하는 것은

광주시민의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명=17주기를 맞을 동안

광주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신 국민들께 광주시민의 한사람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정말 열심히 싸워주셨습니다.

이제 광주는 5.18국가기념일 제정 원년을 기점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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