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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보고세로읽기>서울을 넓게 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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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최근 유엔 인구국 발표에 따르면 선진국의 도시인구 비율은 75%라 한다.이 비율은 계속되는 인구 도시집중에 의해 금방 더 늘어날 것이며 2006년에 이르면 전 인류의 반이,2030년에는 4분의3이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서울의 인구 과밀도는 이 선진국 수치에 딱 들어맞는다.그 과밀은 서울을 일요일 아침 대중목욕탕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목욕탕의 열기와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로 서울은 조만간 압력밥솥처럼 터질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적은 평수 넓게 쓰는 지혜'는 여성지의 전용 광고카피가 아니다.좁은 서울 역시 넓게 쓸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하지만 그런 기대를 하기에 서울의 공간은 너무 경직되고 망가졌다.우리 눈에 들어오는 건물과 도로는 모두 직선으로 도열해 있다.그 직선이 생산의 속도와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가슴을 뾰족하고 날카롭게 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다.밤에는 네온사인이 모든 것을 점령한다.

공간이나 건물의 실체는 사라지고 대신 네온사인의 지주대 노릇만 하고 있다.도시의 밤은 사람의 밤이 아니라 네온사인의 밤이 된지 오래다.지상이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치자.그러면 땅속은 땅위와 막상막하다.지하철의 건설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서 조금만 구성과 디자인에 신경쓰면 숨막히는 땅의 피난처,즉 도시의 오아시스가 있다.지하철역 수만큼 서울에 자리한 휴식처. 그러나 지하철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그런 기대는 물색없는 투정임이 확인된다.“너에게 노란색 스포츠카 향기가 난다”는 남성화장품 광고에서“데이트 5분전,세번째 프로포즈”의 남녀 팬티 광고에 이르기까지 지하철의 모든 벽은 온통 상품 광고판으로 도배돼 있다.요즘은 그 크기가 극장 간판에 버금간다.

그게 아니면“2000년 서울,푸른 내음 나는 녹색도시입니다”라는 사기성 짙은 공구호나“지하철은 안전하게 손님은 질서있게”등의 60년대식 대국민 홍보용 광고가 나머지의 전부다.

차속에 들어가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차가 발 앞으로 들어오면 차벽에 붙은 복권이나 신용카드 광고판이 먼저 반긴다.차속 역시 눈을 돌리는 곳마다 상품광고가 따라붙는다.아니면 색안경 쓴 쥐 그림과“잘 보면 꼬리가 보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정보기관의 불순분자 신고요망 스티커,혹은“독가스가 살포되면…”등의 경찰청 스티커 뿐이다.오아시스는커녕 우리를 더욱 피곤하게 하는 공간일 따름이다.

지하가 왜 몽땅 상품광고의 전시장이 돼야 하는지 알 수 없다.5.6.7호선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광고 식민지로 편입되지 않는 여백이 남아있는 것이다.그것을 서울의 과밀과 열기를 잠시 누그러뜨리는 조그만 샘터로 만들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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