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지성 ‘이젠 터프가이라 불러다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변했다.

12일 첼시전에서 박지성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맨체스터 AFP=연합뉴스]

항의 한 번 안 하고 헌신과 양보만 하던 순둥이가 경고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부딪치는 악바리로 탈바꿈했다.

12일 새벽(한국시간) 맨 유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홈 경기에서 박지성은 풀타임 활약하며 또 하나의 옐로 카드를 추가했다. 지난달 30일 미들즈브러전에서 옐로 카드를 받은 후 두 경기 연속 경고였다. 영국 축구계에서는 빅 매치에서 얻은 경고는 훈장이라는 말이 있다. 경고를 무릅쓰고라도 승리를 쟁취하라는 뜻이다.

달라진 박지성에 대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물론 영국 언론도 호평을 쏟아냈다. 이날 맨유는 전반 종료 직전 비디치의 헤딩골에 이어 후반 루니와 베르바토프의 쐐기골로 첼시를 3-0으로 격파했다. 12승5무2패(승점 41)를 기록한 맨유는 2위 첼시를 승점 1점 차로 따라붙으며 리그 3위를 지켰다. 선두 리버풀과는 5점 차이지만 두 경기를 덜 치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두 탈환도 눈앞에 보인다.

◆강해진 박지성…빅매치 전용 탱크=후반 20분 30m를 내달리던 박지성은 3명의 첼시 수비수에게 막혀 넘어지자 첼시의 파울이 아니냐는 제스처를 썼다. 그냥 경기를 진행시킨 하워드 웹 주심은 3분 후 경기가 중단되자 그에게 달려와 시뮬레이션 액션이었다며 경고를 줬다. 박지성은 맨유에 입단한 후 미들즈브러전까지 41개월 동안 단 한 개의 경고도 받지 않은 조용한 선수였다. 한 시즌에 5개의 경고가 누적되면 한 경기 출전이 정지되는 터라 자주 경고를 받는 것은 문제지만 지나치게 온순하면 깔보는 게 영국 축구장의 분위기다. 박지성은 ‘빅 리그 생존법’을 터득하며 점점 강인해지고 있다.

박지성은 맨유 5년차 베테랑답게 어느 때보다 많은 볼터치를 했고 실수 없이 정확한 패스를 제공했다. 특히 전반 43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시도한 강력한 왼발슛은 첼시 수비수 존 테리가 몸을 던져 막지 않았다면 골로 연결됐을 장면이었다.

◆할머니 응원에 힘낸 손자, 영국 언론 호평=박지성이 더욱 힘차게 뛴 것은 관중석에서 손자를 응원한 할머니 김매심(73)씨의 응원 때문이다. 손자를 보려고 힘들게 영국을 찾은 김씨는 이날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와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박지성은 경기 후 “할머니는 내가 뛰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신다. 다치지 않기만을 바라신다”고 말했지만 골을 선물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보였다.

지역신문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박지성의 에너지와 기강은 항상 중요한 경기에서 그를 선택하는 이유다. 플레처와 마찬가지로 박지성은 자신이 경기에 나서야 하는 정당성을 입증했다”며 평점 7점을 부여했다. 쐐기골을 넣은 웨인 루니, 라이언 긱스, 호날두와 같은 평점이었다. 스카이스포츠는 ‘지칠 줄 몰랐다’며 평점 8점의 높은 점수를 줬다. 박지성은 15일 오전 5시 위건 애슬레틱과의 홈 경기에서 할머니를 위한 골에 다시 도전한다.

최원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