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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29> 공인노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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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노무사는 사업자와 근로자 사이의 일을 해결하는 전문 중재인이다. 노무법인 광장의 홍수경 노무사가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공인노무사란 어떤 직업인지 설명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노무법인 광장의 홍수경(39) 공인노무사는 지금도 7년 전 맡았던 사건을 잊지 못한다. 지방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자재 더미에 깔려 사망했다. 문제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해당 기업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이었다는 점. 회사 측은 보상을 못해주겠다고 버텼다. 흥분한 유가족은 장대비를 맞으며 회사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홍 노무사는 먼저 자신에게 사건을 맡긴 유가족을 설득했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달랬다. 그리고 회사를 찾아갔다. 합의가 안 되면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양쪽 모두 손해 아니냐고 말했다. 마침내 회사도 위로금을 내겠다고 물러섰다.

노무사는 사업주와 근로자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자문·중재하는 직업이다. 국가 공인 자격증을 따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직업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노동 관련 업무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어 전망은 밝은 편이다. 2008년부터 국선 노무사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돼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

◆늘어나는 업무 영역=국내에 공인노무사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4년이다. 지금까지 2500여 명이 시험에 합격했다. 가장 대표적인 노무사 업무는 채용·해고·임금·복지·산업재해 등을 놓고 노사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중재하는 일이다. 변호사가 소송에서 원고·피고 어느 쪽이든 변호할 수 있는 것처럼 노무사도 근로자·사업주 가운데 한쪽을 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노무사가 하는 일이 이게 전부는 아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의 관계에서 협상권을 위임받아 한쪽을 대표할 수도 있다. 기업의 인사관리에 자문을 하거나 아예 외주를 받아 직접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도 한다. 성과급이나 임금 피크제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는 기업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자문을 하거나 기업·단체로부터 강연 부탁을 받기도 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07년 노무사 평균 임금은 4083만원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면 진로는 다양한 편이다. 노무법인에 취업하거나 직접 노무사사무소를 차릴 수도 있고, 대기업 인사 담당으로 취업하기도 한다. 각종 노동 관련 기관이나 노동조합의 상근 노무사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엔 인사 컨설팅 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정혜영(34) 연구실장은 “비정규직·복수노조 같은 노동 관련 이슈가 점점 다양해지고 복잡해져 노무사의 역할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사가 되려면=일단 시험 준비가 먼저다. 1, 2차 필기시험과 면접에 통과해야 하며, 수준이 높은 편이라 집중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합격자들은 1차는 민법, 2차는 노동법과 인사노무관리론이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말한다. 노동법은 사법시험 못지않게 어렵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인사노무관리론은 시사적인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기 때문에 각종 사회 현상과 학회·협회의 연구보고서까지 꼼꼼히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합격했다고 꼭 훌륭한 노무사가 되는 건 아니다. 한국공인노무사회와 취업·인사 포털 인크루트가 노무사 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노무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전문 법률지식(28.9%)보다 협상·중재·설득 능력(38.9%)을 더 많이 꼽았다. 홍수경 노무사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을 중재하기 어렵다”며 “많은 사람을 접해 인간 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지가 있다면 사정이 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도 많다. 저소득 근로자가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고 주장할 때는 국선 노무사가 돕게 된다. 노무법인 천지의 박기현(39) 노무사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60대 할아버지가 해고를 당한 사건을 맡아 일자리를 되찾아 드린 적이 있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자료 협조: 인크루트 www.incruit.com



■선배 한마디

문웅 노무사 (노무법인 산재)

타협 이끌기까지 숱한 스트레스 …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 갖길

 노무법인 산재의 문웅(36) 노무사는 경력 7년차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감사이기도 하다. 그는 “노무사는 첨예한 노사 갈등의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며 “늘 신중하고 치우침이 없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중국 동포의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다. 처음엔 맡기 꺼렸지만 사정이 너무 딱해 맡았다. 몇 달간 병원에 있다 결국 사망했는데 보상금을 전달하려 해도 유족을 찾을 수 없었다. 중국 현지까지 어렵게 수소문해 어린 자녀를 찾아 보상금을 전달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

-노무사란 직업의 장단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타협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평생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기업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도 노무사 자격증이 있으면 인사 분야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갈등을 중재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고성이 오가는 현장을 다니다 보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자기 관리가 중요한 직업이다.”

-필요한 자질은.

“업무에 필요한 지식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시험에 합격할 정도라면 관련 지식은 웬만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대인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법적인 부분만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도 많다.”

-앞으로의 전망은.

“미래가 밝은 직업이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질 경우 인사 관리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산업재해도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점차 종류가 늘고 있다. 노무사가 할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전문인력도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시험 준비는 어떻게.

“공인노무사는 수험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시험이다. 난이도 역시 올라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2차 시험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 가운데 하나인 인사노무관리론은 교과서 한 권으로 해결되는 시험이 아니다. 항상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터넷 수험생 동호회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지망생에게 한마디.

“합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시험에만 매달려선 좋은 노무사가 될 수 없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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