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예술위 , 뭐가 그리 급했기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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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또 시끄럽다. 예술위는 1년에 1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국내 대표적인 예술 지원 기구다. 최근까지도 문화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던 김정헌씨가 위원장으로 있어 ‘코드 인사’ ‘대못질 인사’ 등 논란이 뜨거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2월 ‘방만한 기금 운영’을 이유로 김씨를 위원장 자리에서 해임했다. 그런데 김씨가 나간 지 한달 만에 또 다른 인사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발단은 신임 사무처장이다. 오광수(71) 위원장 직무대행은 9일 신임 사무처장으로 윤정국(51) 전 충무아트홀 사장을 선임했다. 예술위 최고 의결기구인 ‘11인 위원회’를 열어 현재 공석인 위원장을 제외한 10명의 위원중 9명의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사무처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12일부턴 출근 저지 투쟁도 벌일 참이다. 장병태 노조위원장은 “새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을 왜 직무대행이 하는가. 통상적으로 ‘11인 위원회’ 회의를 할때면 간사 자격으로 사무처 직원들이 배석을 하는데 9일엔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채 위원들끼리만 회의를 해 급작스레 사무처장을 결정했다. 졸속이며 밀실 인사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 직무대행은 “새 위원장이 올 때까지 사무처장이 없으면 업무 공백이 너무 길다.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빨리 뽑으라’는 독촉이 있었다”고도 했다.

실제로 사무처장은 예술위 실질적인 책임자다. ‘11인 위원회’가 주요 안건을 결정하지만, 그 안건이 대부분 사무처를 통해 올라오기 때문이다. 중요한 만큼 신중해야 한다. 규정엔 사무처장은 위원장의 고유 인사권으로만 돼 있다. 직무대행이 해선 안된다는 규정 또한 없다. 그러나 이런 핵심 보직을 새 위원장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직무대행이 결정하는 건 상식과 어긋난다. 신임 위원장은 이달말 임명될 예정이다. 20여일의 업무 공백을 우려할 만큼 지금껏 예술위가 그토록 민첩하게 일을 처리했는지 묻고 싶다.

이런 까닭에 ‘문화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란 의혹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 “자율권이 생명인 예술위 위원들이 권력의 눈치만 보는 ‘들러리 위원’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예술위 위원중 "직무대행 체제에서 사무처장을 뽑는 건 무리가 있다”며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한 이는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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