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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27. 영상자료원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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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멀티미디어 영상시대가 되면서 문화유산으로서 영상자료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실생활에도 깊숙이 자리잡게 된 영상문화의 기본이 되는 영상자료의 수집.보존.보급은 정보사회의 발전과 함께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됐다.그러나 우리 영화산업이 다른 경제.문화분야와 비교해 바닥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영상자료의 수집.보존.정리.연구등의 역할을 맡은 영상자료원의 현황도 그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평가된다.

74 년 특수영상자료에 접근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한 필름보관소는 90년 문화부 독립,94년 연극영화의 해를 거치면서 현재 정부보조 재단법인인 한국영상원(이사장 신우식)으로 예술의전당 한 귀퉁이에 자리잡아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외국의 시네마테크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은'불가사의한 존재'란별명이 붙어 있다.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자료가 미비하기 때문이다.식민지배와 전란등 아무리 풍파를 많이 겪은 나라라고 해도 이처럼 보유자료가 형편 없는 경우는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美,매년 25편 문화재 지정 선진국에선 3만여편,개발도상국도 1만여편 내외의 필름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장.단편영화 모두 합쳐 3천편이 안된다.지금까지 기록상 제작된 것으로 돼 있는 4천8백77편의 우리 영화 가운데 55% 수준인 2천6백76편만이 보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해방전 제작된 2백40여편의 우리 극영화는 단 1편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따라서 한국영화연구자들은 실제 작품을 전혀 볼 수 없는 이 시기를 한국영화의 선사시대라 일컬을 정도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는 최인규감독의 46년작'자유만세'로 그나마 필름의 마지막권은 유실된 상태다.

특히 현재 영상자료원의 열악한 예산에서 우리 영상자료의 발굴.보존.연구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전액 국고에서 나오는 예산은 지난해 14억원에서 23억2천만원으로 한층 증액됐으나 영상 수집을 위한 발굴.구입.복사등과 항온.항습 시설및 복원.열람.데이터베이스등을 위한 기자재를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술의전당 미술관 건물 지하층에 자리 잡은 영상자료원의 보유가능공간은 4천5백편 가량으로 기존 자료의 복사본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비좁은 상태다.

한편 관계당국과 영화관계자들은 영상자료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져 영화를 귀중한 문화재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88년 국가필름보존법을 제정해 매년 25편의 영화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등 영화가 오락상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광범위하게 담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하얀전쟁' 원판 일본 소유 그러나 우리의 영상자료 축적은 최근까지도 영화관계자들의 인식부족으로 허점 투성이였다.외국영화까지 포함,개봉영화의 필름 납본은 당국에서 제도화시킨 지난해 7월부터 비로소 제대로 이뤄지기 시작했다.그 이전의 영화들은 완벽한 형태의 자료 보존이 안된 셈이다.

한 예로 우리 영화가운데 네거티브.포지티브.복제본 필름등 원래의 완전한 형태로 영상자료원에 남아 있는 것은'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편 뿐이다.정지영감독의'하얀전쟁'은 오리지널 원판이 우리나라엔 없고 일본에 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연구자들이나 원작자들이 영상원에 자료를 찾으러 왔다가 허탕치고 마는게 비일비재하다.영상원 호현찬 전이사장은 이같은 현실에 대해'필름고아원'이란 개탄스런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이때문에 영상자료원을 기반으로 한 영화연구와 국제적 영상 교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프랑스의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외국영화주간에서 일본.중국등의 경우는 3백여편의 영화가 상영됐으나 한국은 자료가 없어 60여편밖에 선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서 영상자료원의 효율적 발전을 위해서는 문체부 산하단체로 존재하고 있는 영상원의 위상을 정식 공공기관으로 확립시켜 설립목적과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많이 지적된다.

'국립영상원'으로 개편돼야 무엇보다도 자료 전량 확보를 위한 예산확보가 전제된 상태에서 일본.미국등 해외의 공공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한 해방전 영상자료를 발굴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포화상태에 이른 보존공간의 확대와 나아가서는 독립된 건물과 문화재관리국과 같은 차원의 국립영상원으로 확대개편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영화 뿐만 아니라 비디오.방송용.뉴미디어등으로 같은 영상자료가 여러가지 미디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구조를 감안해 영상물의 일원화된 관리가 시급한 형편이다.

특히 국립도서관.국회도서관등과 대학등 연구기관과의 긴밀한 협조 없이는 우리 영상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영상물의 관리를 총괄하는 기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상자료원 설기환 자료부장은“현대를 고증하고 연구하는데 영상자료만큼 구체적이며 확실한 기록은 없다”며“정보와 문화의 국제전쟁 시대를 맞아 영상자료를 수집.보존하는 문제는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영상자료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필름 복원.복제를 위해 작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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