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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중년>7. 판소리에서 인터넷까지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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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중년의 미덕'이 될 순 없다.이마의 주름살로 새겨지는 세월의 흔적 만큼 사고의 폭이 유연해지고 내적 가치를 발견해가는 범위도 함께 넓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성숙한 중년일지라도'구(舊)문화와 신(新)문명'에 대한 갈등은 깊고 낯설다.랩댄스를 즐기는 젊은이들은 구문화에 대한 향수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대신 컴퓨터같은 신문명의 이기는 생활처럼 자연스럽다.

새삼 자신의 뿌리로 다가오는 전통문화와 친숙해지고 싶기도 하고,다가올 미래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낯설기만한 컴퓨터에도 적응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기도 하는'야누스의 삶'이 오늘날 우리 중년의 모습이다.

주부 서향림(52.서울서초구방배동)씨는 요즘 판소리와 살풀이춤 맛에 푹 빠져 있다.경상남도 진주가 고향인 서씨가 처음 판소리를 접한 것은 스무살 때.뚜렷한 기억도 없는 고향동네 소리꾼으로부터다.궁중기생 출신이던 그에게 소리와 장구를 익히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딴따라'라는 놀림에다 주위의 반대 성화에 제대로 목청 한번 올리지 못했다.마흔줄에 들어서면서 서씨는 새록새록 옛날의 그것이 그리워졌다.“듣기도 싫던 꽹과리 소리가 마음을 당기기 시작하더라구요.자식들도 컸고 생활의 여유도 생기고 해서 5년전부터 판소리를 시작했지요.해야겠다는 뚜렷한 동기는 없었지만 이거 안했으면 내 중년을 어떻게 보냈을는지 싶네요.”시간나는대로 국악강좌를 찾아 소리 익히기에 열심인 서씨의 말이다.

국립국악원내 국악진흥회(02-580-3141)가 마련한'문화학교'에는 4백여명에 이르는 중년들이 판소리.한국무용.가야금등을 익히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전통민속예술원 한무리(02-418-0248)에도 50여명의 중년들이 참가하고 있다.이밖에도 각 언론사나 백화점 문화센터에 개설된 국악교실에도 중년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김명자(숙명여대 가정관리학과)교수는“남성은 남성답게,여성은 여성답게란 사회 억압 구조가 중년이 되면서 약화돼 서로 반대의 성의식이 분출된다.그래서 여성은 억제당했던 문화생활에 대한 행동욕구로,남성은 여성적이라는 생각으로 억제해 왔던 전통문화에 대한 행동욕구를 갖게 돼 국악에 관심을 가지는 중년들이 늘게 된다”고 설명한다.전통문화를 되찾는 움직임의 한편에는'테크노 스트레스'로 대변되는'중년 컴퓨터 불안증후군'이 있다.중년이 된 베테랑 사무직에게 컴퓨터는 지금까지 쌓아온 업무상의 노하우를 단번에 무용지물로 만드는'적'이다.게다가 컴퓨터 세대라는 신세대 직장인들에게서 느끼는 소외감도 만만찮다.

실제 본지 여론조사팀이 최근 4백84명의 중년을 대상으로 컴퓨터 사용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익숙하게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응답자는 5.3%에 그치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센터 손연기박사는“두뇌의 유연성이 굳어진 나이에'놀이'로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적응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라며“하지만 생각보다 컴퓨터 작동법이 쉽고 배워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중년이라도 적극적으로 정보화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삼성SDS가 기업체 임원급과 정부기관 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21세기 경영자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테라코 박태규(45)대표이사는“지금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하면 영원히 처져 신세대들과의 교감에 장애를 느낄 것 같아 열심히 배우고 있는중”이라며“막상 해보니 왜 아이들이 매료되는지 짐작이 간다”며 만족해 한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중년을 위한 다양한 컴퓨터 교육기관이나 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수강생의 수준에 맞춰 알맞은 컴퓨터교육기관을 알선해주는 한국정보문화센터(02-5018-114)는 컴맹스트레스 탈출을 도와주는 드문 기관이다. 신용호 기자

<사진설명>

우리 것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이기지 못해 판소리에 입문한 국립국악원 문화학교 중년수강생들.목청껏 소리가락을 뽑고 있다. 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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