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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달러 투자한 노바티스 매출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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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대 약대 교수이면서 신약개발 전문업체 네오믹스를 차린 김성훈(51·사진) 교수는 5일 기자와 만나 “이젠 한국과 외국의 벤처투자자 속성을 다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5년 8월 네오믹스를 설립한 뒤 수많은 국내외 벤처투자자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그는 “국내 벤처투자자와 무슨 수를 쓰든 2~3배의 수익을 챙겨 나갈 수 있는지만을 따졌다”며 “그러나 외국 벤처투자자는 장기적으로 원천기술 확보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으로 유명한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는 6억 달러로 운영하는 자사 벤처펀드를 통해 최근 김 교수의 네오믹스에 100만 달러(약 13억원) 규모의 초기투자를 했다. 한국 업체로는 처음이다. 얼마 전 김 교수는 1년여간의 심사 과정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노바티스 관계자들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그 자리에서 김 교수는 “한국 증시에 기업을 상장하려면 매출을 올려야 하는데, 무슨 수단을 써 일으킬지 고민이다”고 조언을 청했다. 그러자 노바티스 벤처펀드 담당자인 안야 코에니그 박사는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하면 신약을 성공적으로 개발할지에만 주력하라”고 주문했다. 다른 참석자는 “매출을 올리려면 바이오식품을 팔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미래가치가 없는 회사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2006년 과학기술부로부터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될 정도로 연구만큼은 자신 있는 김 교수가 왜 이처럼 매출을 고민했을까. 노바티스와 접촉하기 전 한국의 벤처투자자들과 만나 쓴맛을 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벤처투자자들에게 암을 억제하는 방식이 완전히 새롭다는 얘기를 줄기차게 했지만,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 3년 뒤 수익을 챙겨 빠져나가는 데에만 관심이 많았다”며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우리의 투자문화 수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노바티스 벤처펀드는 연구물의 미래가치를 파악하는데 훨씬 앞서 있더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3년 쥐의 폐암에 관련된 세포 내 조절인자를 발견했고, 이를 기본으로 혁신적인 암 진단법과 치료제 개발을 목적으로 네오믹스를 설립했다. 이 조절인자를 억제할 수 있는 물질 개발도 끝냈다. 특정 조절인자가 있는 폐암 환자가 항암물질을 흡입하면 병의 진행이 멈추는 방식이다. 개발된 물질의 상품화를 위해서는 동물을 이용한 독성시험(전임상시험)과 세 차례의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험난한 과정이다.

노바티스의 1년간 심사기간도 간단하지 않았다. 노바티스 측은 섣부른 연구 전망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자료를 수없이 요구했다고 한다. 앞으로 연구 진행 상황을 협의하기 위해 노바티스에서 이사를 파견하고,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네오믹스는 노바티스의 자금에 외부 자금을 더해 올여름부터 전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또 노바티스는 2013년까지 한국의 벤처기업에 2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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