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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이번에는 정말 경찰에 신고해야 하겠지?” 구환은 경찰로 하여금 폐허 마을을 수색하도록 하여 그놈들을 잡아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처리한 일과 강도행각을 벌인 일을 추궁하면 원지를 덮친 놈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그놈들이 시체 처리 문제를 놓고 국제 전화를 한 내용은 이미 녹음되어 있으므로 충분한 증거가 되고도 남지 않는가. 하지만 그 녹음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하는 일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원지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경찰에게 몇 가지 사안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야 하는데,그 일이 그리 수월하게 풀릴 리 만무하였다.원지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원지의 불륜 관계가 확인된 연후에나 공개할 사안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막연한 통화 내용 이외는 어떤 단서도 잡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녹음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하지 않아도 그놈들의 살인행각과 강도행각을 넉넉히 증명해줄 증거물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문제는 그놈들이 과연 폐허 마을에 있느냐 하는 것인데,구환이 폐허 마을 전봇대에 올라가 유선방송 동축선을 수거하는 체 하며 살펴본 바로는 있다 없다 쉽게 단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불량 청소년으로 보이는 치들이 한 두명 눈에 띄는 것 같다가도 그냥 폐허 마을을 다니러 왔을 뿐인지 금방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비록 폐허 마을에 어떤 가출 불량 청소년들이 집단적으로 기거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국제 도둑 전화를 한 그놈들이라고 막바로 단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들 하나 하나의 목소리를 대조해보고 원지와 대질 신문도 벌이고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바로 그놈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원지는 이번에 당한 강도 강간 미수 사건을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지 어떤지 생각이 많은 모양이었다.천장으로 시선을 두고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 아줌마랑 의논을 해야 돼.”“주인 아줌마는 왜? 이건 주인 아줌마랑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 문제잖아.” 구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원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원지가 헝클어진 머리채를 한손으로 받쳐올리며 부스스 일어나 않았다.

“사실은 주인 아줌마도 당했어.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당신에게는 말하지 않을 수 없어.내가 주애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주인집으로 달려들어갔는데 말이야,글쎄,주인 아줌마가 안방에 테이프로 입이 막히고 손발이 넥타이 끈으로 묶여서 이불에 덮여 있는 거야.그놈이 주인집 들렀다가 우리집으로도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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