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황제가 보낸 '예수성상' 부활절 행사에 다시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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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교회의 경우 그레고리우스력을 기준으로 삼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와는 달리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활절이 27일이다.2천여명의 국내 그리스정교회 신도들에게 이번 부활절은 의미가 색다르다.1903년 러시아 정교회가 우리나라에 진출할때 니콜라이 2세 러시아황제가 보내준 성상(사진)을 46년만에 되찾았기 때문.1874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수도원에서 제작된 이 성상은 그리스어로'장례'의 뜻인'에피타피우스'로 불린다.크기는 가로 90㎝,세로 180㎝.십자가에서 내려진 뒤의 예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부활절행사에서 신부가 어깨에 두르는 아주 성스런 것이다.

천 한가운데의 예수상은 15파운드의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졌고 예수상 주변으로는'성금요일'찬송가의 한 구절이 그리스어로 적혀있다.이 성상은 예수 처형 당시 예수의 관을 덮는데 사용한 것을 새롭게 만든 것.6.25당시 지금의 경향신문 자리에 위치했던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는데도 이 성상만은 미공군병사 잭 쿠돌라 하사에 의해 온전한 상태에서 발견되었다.정교회 신자였던 쿠돌라 하사는'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이 성상을 고향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랜킨의 성 미카엘 성당에 옮겼다.그뒤 우리나라 정교회는 6.25를 거치면서 소속이 러시아정교회에서 그리스정교회로 바뀌게 된다.1백23년이나 된 이 성상을 되찾는데는 인터넷 덕에 겨우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70년대 미군으로 한국에 주둔했던 클리프 아규라는 정교회 신문기자가 미국 랜킨의 성당에서 한국의 성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에 귀띔해준 것은 지난해 12월.우리나라 그리스정교회측은 그후로 몇차례 인터넷을 통해 사연을 주고받은 끝에 지난 17일 이 성상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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