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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아름다워] 국경 없는 몸짓 언어…문제는 '보편성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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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체조건으로 보면 한국 무용수들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꿀릴 게 없다. 하나 신체조건이 국제 경쟁력을 결정짓는 전부는 아니다. 보다 우선 할 것은 신체를 매개로 한 보편적 무용언어의 습득이며, 이를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연기력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안성수 교수는 "신체 균형미나 태가 좋아졌지만 우리 학생들이 무용언어를 습득하고 연마하는 수준은 그만 못하다"고 진단한다.

일례로 사랑을 표현하거나, 상실과 죽음을 표현할 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양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용수가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하다. 현대무용을 보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은데, 그 이유는 신체 언어의 전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한국 소재 신작 공연을 봤다. 바우슈가 이끄는 부퍼탈 탄츠 테아터는 다국적 무용단이다. 한국 출신 김나영이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이 무용단 공연을 볼 때면 무용수의 국적별 개성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곁들여진다.

이번 신작이 한국 소재여서 나와 동행한 기자들이 한국 출신 무용수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 신작에서 우리를 사로잡은 것은 인도네시아 출신 무용수 디타 미란다였다. 그녀는 전반부 15분여의 솔로를 비롯해 종횡무진 무대를 누볐다.

무용수들이 구성한 장면 중 주제에 맞는 것을 골라 재배열하는 바우슈의 안무방식을 볼 때 이 무용수가 표현한 한국 정서가 발군이었던 모양이다. 기자들도 그녀의 춤에서 살풀이의 격한 비감(悲感)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전통 몸짓'이라도 우리가 해야 제멋이 난다고 우쭐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 무용수가 남의 것을 남들보다 잘 출 수 있듯, 남들로 우리 고유 것을 우리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음을 인도네시아 무용수를 통해 배웠다. 그게 보편성의 힘이다. 우리 몸짓의 고유성조차 도전받고 있는 시대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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