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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생활 속에서 기리는 호국영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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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여름 미국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들려준 얘기 하나.

가족과 함께 하와이에 들른 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침몰한 애리조나 메모리얼호를 보기로 했다. 관람은 공짜였지만, 무턱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국에서 관람객이 몰려 예약조차 쉽지 않았다. 차림새에 대한 규제도 엄격해 모자를 쓰면 안 된다는 등 주의사항이 많았다. 마침내 그의 가족 차례. 그러나 곧장 함선행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이 전쟁의 의미를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고 난 뒤라야 했다. 그는 "상영이 종료된 뒤 당시 전투복 차림을 한 연로한 재향군인이 나와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은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던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효과로 관람 내내 엄숙한 분위기가 유지됐음은 물론이다.

기념관의 스포트라이트에 갇혀 박제된 전쟁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전쟁의 의미. 감탄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대학은 물론 고교에도 그 학교 출신으로 국가를 위해 전사한 참전용사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어요."

한국전쟁을 마감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궁핍했던 우리네 살림살이는 이제 가정마다 자가용 한 대는 둘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에 1인당 국민소득 1만1400달러. 대한민국의 이름 아래 누리는 이 안락한 삶은 멀리는 반만년 동안 930여회에 걸친 크고 작은 외국의 침략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 선조에게, 가까이는 한국전쟁의 참화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전몰장병에게 빚진 것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의 ㄷ자형으로 된 긴 회랑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한 국군 17만명과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깃발 아래 참전했던 외국군 3만8000명의 전사자명비가 줄지어 있다. 우리도 이들을 생활 속에서 부활시킬 수는 없을까.

최근 육군본부는 건물 통로에 명예의 전당을 설치하고 창군 이후 전사한 연대급 이상 130개 부대 16만4998명의 전사자 명패를 헌액했다. 육본에서 사무를 보는 장병들이 복도를 오가며 선배 전우의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하기 위해서란다. 참으로 멋진 호국영령들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현충일, 추모 사이렌이 울려도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고마움을 모르는 젊은 세대라고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전흔조차 접한 적 없는 젊은 세대에게 변함없이 '박제된 선열'만을 주입시킨 탓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호국영령들을 우리네 일상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 단초는 학교다. 유달리 끈끈한 우리의 '출신교 연대의식'은 전후에 태어난 유복한 세대에게 호국영령들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동인이 될 수 있다.

전쟁기념관 전시장에는 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서 숨진 1976명의 전사자 수가 학교별로 기록된 동판이 있다. 비록 기록이 부실해 미국처럼 졸업생까지 챙기지는 못하더라도 재학생으로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이들의 명패를 교정 어딘가에 세우는 것은 그리 힘들 성싶지 않다. 1996년 서울대가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김철기 일병 등 23명의 전사자를 찾아내 대학문화관 대강당에 명비를 설치했으니, 영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베트남전 등 근래 전투에서 산화한 이들이라면 동문을 확인하는 일은 더 손쉬울 수 있다.

말 없는 명비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없다. 평화의 절실함을 일깨우는 것은 언제나 전쟁의 잔혹사가 아닌가.

홍은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