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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석달간 夏安居 들어간 백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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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앉아 있다고 참선은 아니다. 백양사 방장 수산(가운데) 스님이 젊은 학승들에게 수행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지난 1일 오후 10시 전남 장성군 고불총림 백양사에는 휘영청 보름달이 밝았다. 사방 어둠을 밝히는 달빛이 산사의 정적과 어울리며 속세의 안녕을 기원하는 듯했다. 이날 산사는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2일 시작하는 올 하안거(夏安居.여름철 석달간 산사 출입을 금하며 수행에 전념) 기간 중 식사.청소 등 스님 각자가 맡아 할 일을 정했다.

매년 거르지 않는 '연례 행사'지만 백양사의 올 하안거는 각별하다. 한국 현대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참사람 운동'을 주창해온 서옹 스님이 지난해 입적하고, 새 방장(선원.강원.율원을 모두 갖춘 총림의 가장 큰 스님)으로 수산 스님이 취임한 이후 처음 열리는 하안거이기 때문이다. 백양사는 만암(1876~1956).서옹(1912~2003) 스님이 법맥을 이어오며 한국 선불교의 활달한 기운을 지켜온 명찰(名刹)이다. 수산 스님도 이를 의식한 듯했다.

"백양사의 전통은 언행일치입니다. 열반한 큰 스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사람답게 살다 죽는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과학문명과 금전의 노예가 된 우리들을 돌아보고, 전 인류에 사람의 참된 가치를 전할 겁니다. 그러려면 승속(僧俗) 구분 없이 공부에 정진해야죠."

스님이 말한 '참사람'은 명료했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지 않고, 즉 쓸데없는 욕심으로 남을 짓밟지 않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신분.지위.남녀.나이의 차별을 초월한 사람이다. 3개월 내내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는 하안거의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할아버지 스님이셨던 만암 스님이 '중 승(僧)'자를 쓸 줄 아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 인(人)' 과 '일찍 증(曾)'자로 이뤄졌죠. 중부터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사람이 되지 못했으면서도 어찌 중생을 구할 수 있겠어요."

스님은 사심 없는 공부를 제시했다. 말로만 참선한다며 쪼그려 앉아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며 수행 내내 화두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일 오전 백양사에서 4㎞ 떨어진 운문선원에선 여러 사찰에서 온 16명의 수좌(참선에 전념하는 스님)가 본격 하안거에 들어갔다. 깎아지른 듯한 백암산 중턱의 운문선원은 전국 90여개 선원 가운데서도 빼어난 선풍으로 유명해 4~5년 전에 신청해야 들어올 수 있다. 스님들에게 하루 10시간 좌선은 기본이다.

운문선원 유나(維那.선방 책임자)인 지선 스님은 "체력.능력에 따라 하루 20시간 참선할 수 있으나 시간의 다과(多寡)로 수행을 평가할 수 없다"며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인생과 우주의 본성을 처절하게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산 스님은 "일반인도 매일 저녁 가슴에 손을 얹고 오늘 하루 자비와 평등의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면, 그게 바로 참선"이라고 밝혔다. '옳게 살면 바보'라는 어불성설이 현명한 처세술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경악하고, 그 잘못부터 고치는 게 부처를 바로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일 전국 선방에선 2500여명의 스님이 하안거에 돌입했다. 산사의 정진이 오늘보다 좋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 "문제는 철저한 자기정화와 자기개혁이죠." 노스님의 잔잔한 얼굴에 순간 불꽃이 이는 듯했다.

백양사(장성)=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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