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화사 '통일대불' '통일기원대전' 공사 이달말에 완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대구 동화사(桐華寺)가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대구 팔공산(해발 1,193)중턱 5백 지점에 세우고 있는'통일대불'(統一大佛)과'통일기원대전'(大殿)등의 공사가 석가탄신일(5월14일)을 앞두고 이달말까지 마무리된다.착공 7년만이

다.

공사현장에서는 이를 위해 석공 10여명이 정(釘)과 연장을 들고 통일대불 뒤쪽으로 둘러세운 28폭 병풍석(각각 너비 3,높이 4,개당 무게 10)에 각종 불상을 조각하느라 한창 비지땀을 쏟고 있다.

동화사앞 1만평 언덕 위에 세워진 대불은 높이 30(좌대 높이 13 포함),몸통 둘레 16.5로 우리나라 최대의 석조불상(무게 3백정도).

전북익산에서 캐낸 2천짜리 화강석 바위를 8조각 내 깎아 만들어 운반해 붙여 세운 것이다.

이 불상 앞에 세워진 통일기원대전은 통일대불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

90년 10월부터 공사를 시작,먼저 세워진 대불은 92년 대선(大選)을 앞둔 11월27일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정주영(鄭周永)씨등 3당 후보가 참석한 가운데'불상에 눈동자를 그려넣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뜻의 점안식을

먼저 가졌다.그러나 다른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점안식을 먼저 갖자 당시 일부에서는“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5공시절부터 불교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의현(徐義玄)조계종 총무원장이 불교계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한

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어'통일대불 공사를 둘러싼 정치자금 조성의혹'과 관련,93년 봄 불교계의 정화운동을 내세운 조계종 개혁세력이 徐총무원장을 종단에서 내쫓고 동화사를 개혁의 첫째 대상으로 삼으면서 공사가 한때 중단됐다.

'정치자금 조성의혹'은 결국 94년 4월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국회 국정조사권까지 발동되는등 전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사건.

개혁종단은 이 사건과 관련,徐전총무원장을 비롯해 통일대불 조성위원회의 재무담당이었던 현철(炫澈)스님등 여러명의 승적을 박탈하고 동화사등을 강제로 접수해 주지를 바꾸는등 일대 파란을 몰고왔다.당시 徐총무원장은“통일대불을 만드는데 전

국불교신도회 조기현(曺琦鉉.58.청우종합건설 대표)회장으로부터 80억원,대구시로부터 35억원을 지원(교부금 명목)받는등 모두 1백40억원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일대불의 불사금(佛事金)이 얼마나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개혁종단측은 그러나“徐총무원장이 2백억원 이상을 거둬 대부분 정치자금으로 조성하고 통일대불에는 절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曺회장도 당시 광주 상무대 이전공사비 가운데 80억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시주금으로 내는등 유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95년 11월 盧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 터지자 동화사측은 盧씨가 점안식때 기증한'통일기원대전'이란 친필 현판을 천으로 가렸다가 최근 全.盧전대통령의 형량확정 이후 다시 벗겨내기도 했다(본지 4월17일자 23면 보도).

그야말로 사바(娑婆)세계의 파란만장(波瀾萬丈)을 그대로 연출해낸 현장이었다.

이후 동화사 주지로 임명된 무공(無空.62)스님이 중단됐던 통일대불 공사를 95년부터 다시 시작,1년6개월동안 추가공사비 20억원을 들여 이번에 공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추가공사비는 통일대불 점안식 이후 93년부터 5년째 연간 1백만명 이상의 신도들이 대불 앞의 시주함에 넣고 간 돈으로 충당됐다. 〈대구=김선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