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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온 가족의 축제된 결혼기념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아침마다 깨워야만 일어나던 아이들의“엄마 일어나세요”란 소리에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오전6시였다.남편까지 언제 일어났는지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이들과 함께 하트 모양의 예쁜 케이크에 불을 붙이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9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니 믿기지가 않는다.아이들은“엄마,아빠와 나란히 앉으세요”하고 축가를 부르더니 예쁘게 포장한 장미 한송이씩을 주며 축하해주었다.우리집 늦둥이 네살배기 아들녀석도 옆에 서서

손뼉치며 함께 기뻐했다.남편은 화장대에 거꾸로 세워놓은 로션병이 마음에 걸렸던지 영양크림과 함께 로션을 선물로 준비했는데 나는 미처 선물준비를 못한 미안한 마음에“여보 미안해요.정말 고마워요”했더니 남편은“남들은 결혼기념일이라고 여

행도 가는데”하며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결혼해서 몇년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하고 서운한 생각에 혼자 울기까지 했던 기억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은 그들의 몫이 됐고

엄마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되면 며칠전부터 아빠에게 귀띔해주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딸들이 대견스럽다.

신혼시절 나도 신세대 주부들처럼'결혼기념일을 어떻게 보낼까'하고 남편과 함께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했다면 더욱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그 때는 왜 그랬던지 자존심만 내세우고'이 남자가 어디 그날을 기억

하나 보자'하고 있다가 혼자 실망하기도 했다.

무심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남편이 어느새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된 두 딸과 함께 나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여행을 가지 못해도,값비싼 선물이 아니라도 좋다.가족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주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정영순<경북상주시신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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