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노벨과학상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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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5년9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우리도 고등과학원을 만들어 노벨과학상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96년9월 그의 말대로 국내외 석학교수들을 모은 고등과학원이 발족했다.

그해 12월 한국인은 언제쯤 노벨과학상을 받을 것 같으냐는 여론조사가 과학기술자를 상대로 실시됐다.응답자의 절반가량은 20년의 세월이 흘러야 되고,약 17%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조사자들은 국내 연구풍토에서는 노벨상을 받을만한 업적이 나오지 못한다는 절망감(絶望感)을 나타낸 조사결과라고 논평했다.

노벨상의 여신으로 하여금 한국인에게 미소를 보낼 수 없게끔 만든다는 문제의 그 연구풍토는 도대체 무엇인가.조사에 답한 사람들은 첫째 정부의 과학정책결여및 투자부족,둘째 과학자에 대한 낮은 처우및 사회인식,셋째 과학교육부실및 과학자 능력부족을 들었다.

베를린 자유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박성조(朴聖祚)교수는 언젠가'노벨상을 받을 수 없는 한국'이라는 글을 썼다.그 글에서 朴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연구하는 중국인.일본인.인도인들이 자주 노벨상을 받는데 대해 주목했다.그들이 중국

.일본.인도에서 연구하면 업적이 안 나오고 왜 꼭 미국.유럽에서란 말인가.

朴교수는 우선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미.유럽에서는 기초과학연구에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장기간 보장되고,이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을 사회에서 높이 평가해 준다.둘째,기초과학연구는 대학이 중심이 되는데 대학마다 연구과제가 특정화되도록 정책이 잘 조정된다.결국 정책이나 투자가 모두 낭비없이 잘 배분.집중된다는 얘기다.

개도국,특히 한국의 사정은 이와 반대로 돼 있다.정치는 딴데 정신팔고,정책은 백년대계도 없이 우왕좌왕 믿음을 주지 못한다.그렇다고 기업은 제대로 하나.매출액 30조원의 듀폰이 지금까지 4명의 노벨과학상수상자를 낸데 비해 같은 규모의 우리 기업들은 뭘하고 있는가.검찰의 소환조사나 국회 청문회장의 훤소(喧騷)를 떠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정치인.기업인이 있어야 한다.꼭 노벨상이 탐나서가 아니고 과학기술의 진보가 없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그러고 보니 올 과학의 날(4월21일)은 유난히 초라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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