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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무림>5. 무림파천황 前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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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주공(主公)의 뜻이 분명 그러하오?”

“분명 그러하오.”

신한국방내 최대 세력인 민주련의 좌장 백발검자 석재공의 대답은 단호했다.좌중 인물들의 고개가 크게 끄떡였다.석재공은 청와관에 들러 공삼거사를 만났고 공삼의 속뜻을 민주련 고수들에게 전달하는 중이었다.그러면 그렇지.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뭉쳐야 삽니다.뭉쳐만 있으면 주공께서 알아서 할 것이오.지금처럼 너도나도 잘났다고 나서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는게 주공의 뜻입니다.감찰이 아무리 배포가 큰들 설마 현 무림지존인 주공의 뜻을 거슬러 일을 꾸밀 수야 있었겠소?”

다시 한번 좌중의 고개가 끄떡였다.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하게 민주련 고수들을 줄줄이 무림감찰의 포승줄에 묶이도록 한 것은 좀 지나친 처사였어.어쨌거나 주공이 우리를 버릴 수는 없지.아무렴,우리와 주공은 오래전부터 한몸이 아니었던가.지금처럼 바람과 파도가 거셀땐 더더욱 주복일체(主僕一體)가 필요한 법이지.

“무림감찰의 손을 빌려 민주련을 길들이는 고도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남의 칼로 공격하는 술책)라.거기에 허룡 허주공과 자민단 부단주 용환도인까지 끼워넣어 회창객과 종필노사를 견제하는 일석이조도 노리고.역시 아버님다운 솜씨야.”

만인전시기(萬人電視機)를 통해 줄줄이 무림감찰에 끌려가는 여야고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소산공자는 빙긋이 웃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에게만은 공삼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민주련의 단합.공삼은 그게 필요한 것이다.민주련이 회창객이나 수성객·찬종검등에게 각개격파 당했다간 정말 공삼의 설자리가 없어질지도 몰랐다. 물론 공삼의 오랜 수하였던 민주련 고수들에게도 그건 불행이었다.흩어진 민주련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누구와도 싸울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덕룡공이 가장 먼저 무림감찰의 칼을 맞은 것은 당연했다.그는 민주련의 단합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지.황금수를 익힌 적이 없노라고 악착같이 잡아떼다 더 큰 망신을 당한 덕룡공의 모습을 보며 소산은 괜히 즐거워졌다.미련한 덕룡공같으니.종이로 불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거늘.

소산은 덕룡공과 청와관 집사였던 깃털공등의 이름을 무보(武報)에 흘려 자신과 한보문의 연루설을 차단하려 했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비록 더 큰 화를 부르고 말았지만 당시 자신의 일처리는 지금 공삼의 밀계(密計)만큼이나 적절했었다.어려서부터 믿고 따르던 깃털공까지 감찰에 보낸 것은 자신으로선 아주 큰 희생을 한 셈이었다.그런데도 이놈의 빌어먹을 강호백성들이 이젠 영악해져서 좀체로 만족을 모른단 말야.청문회까지 요구하며.

무림청문회에 생각이 미치자 소산은 다시 골머리가 아파왔다.아버지 공삼은 일체의 기별이 없다.마음을 굳힌 것이다.내 잘못이 드러나면 아버지는 가차없이 나를 무림옥에 수감시킬 것이다.그길만이 살길이므로.

내게 드러날 잘못이 없다는게 오히려 아버지에겐 부담일지 모른다.감찰은 내가 황금수를 익힌 증거를 못찾자 이제 내 주변의 온갖 곳을 쑤시고 있다.

전 무림정보부 수석검사였던 기섭의 주변을 뒤지고 화화태세(花花太歲)태중의 황금씀씀이를 캐고 있다.이젠 수하들도 뿔뿔이 흩어졌다.요즘같아선 차라리 무림옥에 갇히는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한 3년 수감될 만한 죄를 내놓고 다음 무

림지존에게 석방시켜달라고 해? 그게 지금으로선 정답일지 몰랐다.아버지를 살리고 나를 살리고 민주련을 살리는.

무림파천황 전야- 삼인은 웃고

웃음 하나는 공삼의 것이었다.부랴부랴 청와관으로 달려온 회창객이며 민주련 좌장 석재공의 화급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즐거움이었다.

그럼 내가 누군가.공삼의 이름은 강호무림사와 같이 하지.민주련은 내 것이야.누구도 내게서 민주련을 빼앗을 수는 없지.나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민주련을 얻지 못하리라.민주련은 내가 점지해주는대로 새 주인을 맞게 될 것이다.

물론 새 주인은 민주련을 얻는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 하리라.소산의 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도 잘 될 것이다.무림지존 자리에 있을 때 이 모든 것은 해결돼야 했다.몽혼약(夢魂藥)을 먹어야만 잠을 이루던 긴 불면의 밤은 이제 끝났

다.내일의 햇살은 유난히 따사로울 것이야.

웃음 둘은 한동거사의 얼굴에 있었다.민주련의 붕괴는 회창객의 좌절을 가져다줄 것이었다.애초에 신한국방 방주자리에 앉은 것부터 잘못이었음을 알게 되리라.무림에선 무공만 뛰어나다고 되는게 아니지.회창객은 그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리라

.내가 방주자리에 올랐었더라면 지금의 회창객처럼 우왕좌왕하지는 않았으리라.

업보지 업보야.그 자리가 어떤 자린줄 알고 넙죽 받아먹어.여기저기 칼자국이 나는 회창객을 보는 것이 요즘 한동거사의 즐거움이었다.깨가 쏟아지도록 고소한.

한동거사는 곧 다가올 북풍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이미 북무림의

첩자를 잡아내는데는 전설적 인물로 꼽히는 오포두가 자신의 진영에

합류했다.북풍은 한번 불면 주위의 모든 것을 쓸어가게 마련.회창객을 비롯해

와룡 수성객과 잠룡 홍

구진인은 절대 무사하지 못하리라.북풍의 공격엔 독룡 찬종검도

가세한다.둘이 회창객에게 칼날을 들이미는 순간 대중검자도 준비한

독수(毒手)를 펼칠 것이다.회창객은 세곳에서 동시에 퍼붓는 합공을 절대

피하지 못하리라.

찬종검이 세번째 웃음의 주인이었다.신한국방의 봉공(奉公:고문)인 그는

당연히 민주련 고수들에게나 전해진 한보문주 정배짱의 황금수를 익힌 적이

없었다.

“초등무학교 훈장에게 주는 소소한 황금은 단호히 처벌하면서

무림고수들에게 주는 황금은 그 액수가 수백배에 달하는데도

떡값이다,무공수련자금이다 해서 면죄부를 주는 현 세태는 분명

잘못이다.”그는 장황하게 사설을 늘어놓은뒤 황금수를 익

히지 못하도록 금령(禁令)을 내리자고 회창객에게 얘기했다.황금수를 익힌

민주련 고수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회창객을 비꼬기라도 하듯.옛말에

이르기를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속에 칼을 품음)라,웃음 가득한 얼굴로.

삼인은 분노하며

첫번째 분노는 회룡 회창객의 것이었다.하루가 다르게 무공은 늘고 있지만

무공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었다.허주공이 감찰의 손에 상처를 받고

자신의 시종장마저 황금수를 익힌 것으로 밝혀지자 회창객의 마음은

무거웠다.

민주련을 위해 감찰에 한마디 한 것도 오히려 적들에게 좋은 공격거리만

만들어 준 셈이다.그러나 잠시 뿐이야.누구도 나를 흔들지 못하리라.강호인

모두에게 알려주리라.내가 익힌 무공의 이름이 왜 춘추필법이고 그중 최고의

초식이 왜 천

주부동(天柱不動:하늘의 기둥처럼 흔들림이 없는 무공)이라

불리는지.그때서야 강호는 알 것이다.무사는 결국 무공으로 승부하는 것임을.

허룡 허주공이 두번째 분노의 주인이었다.'빈배(虛舟) 닿는 곳에

용좌(龍座)있다'는 신화는 끝났다.개천에서도 용은 난다지만 무림의 용은

깨끗한 물에서만 나올 수 있다.속은 아무리 썩었어도 겉은 깨끗해 보여야

했다.

그는 지금까지 깨끗함을 유지해왔다.그러나 황금수를 익힌 것으로 판명되면

모든 것이 끝이다.더이상 용을 만드는 그의 무공은 쓸모가 없어지고 말

것이었다.

세번째 분노는 덕룡공의 것이었다.실수였다.사전에 무림감찰의 총수와

밀약을 나눴었다.정배짱의 황금수인줄 모르고 익힌 것으로 하자고 잘 얘기가

됐다.그러나 젊은 포사들은 내가 뻔히 알면서도 황금수를 익혔다고

까발렸다.소산공자에 이어

공삼마저 자신에게서 민주련을 빼앗기로 작정했음이 이 일로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녹록히 공삼부자에게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다음 무림지존 자리가

눈앞에 있었다.민주련이 최대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무림지존을 노릴 수 없다.지금 뿐이다.결코 물러설 수 없다.덕룡공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나는 결백하다.절대 황금수를 익힌 적이 없다.”

또 삼인은 때를 기다리다

기다리는 자 첫번째는 수성객이었다.무림청문회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정리되리라.상처입은 회창객이 물러나고 민주련이 무릎을 꿇어올

것이다.공삼거사는 내 손을 잡고 말하리라.수성객 그대밖에 없소.그때

마지못하는 척 출사표를 던지면 될 것

이었다.

맹하(孟夏)의 어느날 아늑한 뜨락에서 강호의 소외받은 자들을 모아놓고

말하리라.무림을 위해 이 한몸 바치겠노라고.시간이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내앞에 가져다 주리라.

홍구진인이 두번째의 기다리는 자였다.그는 현재 통일공을 맹렬히

수련중이었다.이제 곧 통일공이 위력을 발할 것이다.청문회가

지지부진해지고 북풍의 밀사 황장엽이 흑명단을 들고 나타나리라.굶주림에

시달린 북무림 무리들이 대화에 나서리라

.그리고 거센 북풍이 몰아치리라.그땐 아무도 통일공에 맞서지 못할

터였다.통일공을 최고로 익힌 자,모든 것을 가지리라.불어라,바람아.

기다림의 마지막은 종필노사였다.무림청문회와 북풍을 이기지 못하고 곧

신한국방은 박살나리라.그때 그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내각공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그날이 오면 종필노사는 즐거운 선택에 고민할 것이다.

새국민회의 대중검자냐,신한국방의 공삼이냐를 놓고.기다려라

무림이여,기다려라 용좌여.무림은 새 주인을 맞게 되리라.

구룡과 3김이 용좌를 꿈꾸는 바로 그 순간 강호에는 잠언 하나가 동요처럼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곧 무림에 파천황(破天荒:전대미문의 일)이 시작되리라.황금수를

익힌자,세력을 뽐내는 자,무공과 실력없이 승리를 얻으려는 자,그 누구도 그

속에서 무사하지 못하리라.파천황은 무림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강호백성의 뜻을 헤아리는

자만이 살아남게 되리라.'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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