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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25. 외국박물관내 한국관 건립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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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년전 전국에 회자한'문화사건'이 있었다.20세기말의 글로벌 경영시대에'TGV=외규장각'이라는 때아닌 물물교환발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경부고속철도의 차량형식이 프랑스의 TGV로 결정되고 93년9월 미테랑 당시 프랑스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돼 있는등 한.프랑스 우호협력관계가 급진전될 때 정부는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때 강화도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약탈해간 왕실문서와 문헌사료를 돌려받고자 했던 것.우여곡절 끝에 미테랑은'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徽慶園園所都監儀

軌 上)'1권을 전달하는데 그쳤고 그 이후 협상에서는 난항을 거듭했다.'문화재 약탈의 왕국'프랑스로서는 선례를 남길 경우 각국에서 봇물처럼 밀려오는'문화재 회수'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계산이었다.하지만 선조가 남긴 문화재가 타향살이 하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게 후손의 도리다.귀국의 길을 마련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반환의 어려움이 엄존하고 있다.또다른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외국박물관내 한국관(韓國館)또는 한국실의 설치는 그같은 의지를

반영한다.현재 유명 외국 박물관에서 중국관.일본관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한국관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외국의

박물관을 찾은 국민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것이 현실.

현재 외국의 박물관에 독립된 한국관.한국실 또는 한국코너를 두고 있는

곳은 모두 13개국 38개 박물관으로 1만9천여점의 한국문화재가 전시돼

있다.해외소재 문화재가 6만4천8백여점으로 조사된 것과 비교해 보면 아직

크게 부족하다.

대다수의 문화재가 지상의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지하 수장고에 묻혀 있으며

소장국들은 지상 전시에 드는 비용을 관련국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하 재단)이 해외한국학 지원과 함께 이들 한국관 설치를

지원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

우선 해외에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나 개인의 폐쇄적인 태도도

문제지만 막대한 예산이 관건이다.

내년 1월 완공예정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한국관에 재단은

3백만달러(약26억4천여만원)를 지원하고 있고 대영박물관에도

1천2백만파운드(약 1백80억원)를 지원하는등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재단은 이밖에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동양문화재 전문박물관으로

김홍도의 8폭병풍등 1천5백여점의 한국미술품을 소장한 기메박물관을

비롯,미국 피바디박물관.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등에도 독립된 한국관

건립을 추진중이다.

단시간내에 많은 수의 한국관을 설치하는데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현지

박물관의 전시공간 확보문제등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우선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국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

재단은 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과 독일 함부르크 민속박물관

등에서 우리 문화재를 전시하고 알리는 한국주간 행사나 안내도록 제작등

기획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외국 유수의 박물관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사회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따라서 이같은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한국관 설치

이후에도 이같은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돼야만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반환을 접어두고 해외소장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인식.재단 관계자는“문화재의 반환만을 고집해선

국제화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며 “해외소재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리의 것을 해외에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관 설치에 앞서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작업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하는 작업이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현재까지 6만4천8백52점으로 나타나 있으나

전문가들은 더많은 수의 문화재들이 해외에 있으며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것으로 진단한다.특히 개인 소장의 경우 드러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가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재단 이외에 문화재연구소도 92년부터 해외출장조사를 통해 집중조사

사업을 시작했지만 북한문화재 조사와 병행해 10여일 일정으로 2~3명이

실시하는 조사업무에는 한계가 있다.유학생과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사하면서 이를 정부에서 관리하는등 보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해외 한국관의 건립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문화인프라 사업이다.막대한

예산과 많은 전문인력이 동원되는 어려운 사업임에 틀림없다.또 단순히 외국

박물관내에 한국관을 설치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 소재파악과

가치 확인,목록발간,

개관후 활용프로그램 개발,외국학자들의 한국학 연구지원등 많은 사업과

연계돼 이뤄져야 하는 총체적 문화사업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사업은 국가.학술단체.개인등 여러 채널에서 진행돼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관과 개인은 정보를 공유하고 사전 사업계획 조정을 통해 중복투자를

막는등 효율적인 사업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인력과 예산확보가 절실히 요구된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 해외소재 한국문화재를 조사하고 한국관을 설치할 경우

외국 박물관들은 반환요구를 걱정하며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등 민간단체들이 앞장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곽보현 기자〉

<사진설명>

91년 개관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내 한국실 내부전경.45평 규모에

5백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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