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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중국산책] 화약 냄새 피어 오르는 미중 수교 30주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79년1월1일 미국 주중국연락처 주임 우드커크가 연회를 열어 미중 수교를 축하했다. 당시 국무원부총리였던 덩샤오핑(우)과 우드커크(좌)가 건배하고 있다.

새해 중국엔 기념일이 많다.
우선 10월 1일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되는 날이다. 5월 4일엔 중국에 신문화 운동 열기를 퍼뜨린 5.4 운동 90주년을 맞는다. 물론 중국 당국이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날도 있다. 천안문 사태 20주년을 맞는 6월 4일이 그렇다. 또 3월 10일은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무장봉기가 발생한 지 50주년 되는 날이다. 2008년 봄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른 중국으로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새해를 여는 기념일은 뭐니뭐니해도 1월 1일의 미·중 수교 30주년이다.
축하해야 마땅한데 중국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숑즈융(熊志勇) 중국외교학원 교수는 ‘경험론’에 근거한 걱정이라며 정색을 한다. 미·중 수교 10주년을 맞았던 89년엔 천안문 사태가 터졌고, 양국 관계는 파탄 일보 직전까지 갔다. 20주년인 99년 5월엔 미국이 이끄는 나토군이 유고주재 중국대사관을 ‘오폭(誤爆)’해 중국대사를 포함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면서 양국 관계가 급랭했다. ‘오폭’이라던 미국의 변명을 믿는 중국인은 지금도 없다.

수교 30주년을 맞는 올해는 어떨까.
갈등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얼마 전 미 뉴욕타임스 보도에서 그런 화약 냄새가 물씬 난다. ‘중국이 값싼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낭비벽을 부추겼다’는 식의 NYT 보도는 '중국 때리기'의 전초전을 알리는 기사 같다. 사실 이 보도는 황당한 느낌을 준다. ‘아버지가 부자라서 헝그리 정신을 잃었다’고 푸념하는 ‘못난’ 아들이 연상되는 것이다.
티베트 문제도 불안 요소다. 대선 기간 달라이 라마를 만나려 했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달라이 라마와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국 내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무고한 중국계 핵 과학자 리원허(李文和)를 ‘간첩’으로 모는 데 일조했던 당시 에너지부 장관 빌 리처드슨이 오바마 정권에서 상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데 대해서도 중국은 불안해 하고 있다(결국 나중에 리처드슨이 특정업체와의 유착설로 사퇴하기로 했지만).

사실 미·중 관계는 매 10년을 주기로 문제가 생겼던 건 아니다. 수교 이후 지금까지 수시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해리 하딩은 이 때문에 양국 관계를 ‘화해’와 ‘소원(疏遠)’이라는 두 키워드로 풀었다. 중국의 한 영도인은 ‘중·미 관계는 크게 좋아지지도, 또 나빠지지도 않는다’는 말로 양국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복잡한 관계’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한 가지 일관된 게 있다.
중국의 꾸준한 성장이 바로 그것이다. 89년 천안문 사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했지만 중국은 중국은 보다 과감한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덩샤오핑의 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로 난관을 극복했다. 97년 말 아시아 금융위기에 이어 닥친 99년의 악화된 중·미 관계 등 여러 어려움은 '경제 짜르'로 불렸던 주룽지 총리라는 걸출한 인물의 등장으로 풀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어려움을 뚫고 중국은 한 발자국씩 성장한 셈이다.

유례 없는 세계적 경제위기,
특히 그 위기의 한복판에서 신경이 곤두설대로 선 미국,
그리고 NYT 보도 등에서 보이듯 이미 터져 나오기 시작한 '중국 때리기' 조짐,
중국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또 한 차례의 성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비단 우리 만의 관심사는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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