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한국이 북한동포의 희망돼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굶주리며 헐벗고 있는 북한동포에게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우선 인도적 차원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다.초근목피와 사료 등으로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의 참상이 아프리카가 아닌 우리 북한동포의 이야기이니 더욱 그러하다.극단적 어려움에 빠진

북한동포를 지원해야 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외에 실질적 이유가 더 많다.

북한동포의 굶주림은 이제 홍수와 가뭄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의 범위를 훨씬 넘은 문제가 되어 있다.이번 사태는 오랜 김일성(金日成).김정일(金正日)부자통치체제의 누적된 실패와 한계에서 비롯된'북한통치자들의 인재(人災)

'이기 때문에 단순히 식량부족문제로 그치지 않고 남북관계에 장차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이번에 우리 북한동포돕기운동이 성공해 한국의 동포애와 부강함이 알려져 북한동포에게 희망을 주고 남쪽 한국을 따르는 마음과 신뢰가 형성되면 북한의 몇개 사단 병력이 우리쪽으로 넘어온 것 보다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이다.인민의 의식주조차 해결 못하는 김정일을 대신해 우리국민과 정부가 나서 해결하면 북한동포는 한국에 희망을 걸게 되고 사실상의'우리 통치권'에 들어오는 것같은 성과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의 참상과 실정이 이번 일로 더 숨겨지지 못하고 전세계에 잘 알려졌다.북한 당국자들도 이젠 어쩔 수 없이 모두 나서 식량구걸행각을 벌이고 있다.이것은 북한이 한국에'백기'를 든 꼴이다.그리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북한의 궤멸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제 분명하게 된 북한의 패배는 그들의 단순한 붕괴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그래서 이제 우리 한국에 남북 한민족을 지도하고 이끌어가야 할 역사적 과제가 지워지고 있다.다시 말해 한민족의 장래를 위해 우리는 북한

의 실패와 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해결할 일종의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통일한국을 민족적 염원이라고 입버릇처럼 역설해 왔다.그런데 그'통일한국'은 북한동포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붕괴되거나 혹은 잘못돼 남북간의 무력충돌이 벌어져 전 한반도가 폐허화된 상태에서 얻으려는 것이 결코 아니

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경제개발과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우리와 동질성을 갖게 될 북한과 우리가 통합해 전체 한민족의 국력이 배가되는 좋은 통일이다.그래서 한민족에게 희망을 주는'좋은 통일'을 위해서도 굶주린 북한동포를 빨

리 지원하는 길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굶주린 북한동포에게 식량지원을 거부한다면 장차 우리가 어떻게 북한 동포들에게 남북통일을 논의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이번 기회를 최대로 활용해 굶주리는 같은 동포를 지원해 우리 한국이 북한동포에게 희망과 빛이 돼야 우리는 우리가 원

하는 통일을 논할 자격과 주도할 권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여러 국제기구와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 북한동포의 참상과 그 위험성을 알리면서 식량지원을 호소하고 있다.주객이 전도돼 있는 것이다.그런데도 아직 우리중에는 북한동포의 굶주림을 남의 일처럼 뒷짐지고 두고보자는 주장도 많다.창피

한 모양새다.

한반도 문제에 미국을 비롯한 외세(外勢)개입을 혐오하고 반대한 우리가 북한동포에 대한 식량지원의 주도권을 자청해 미국 등 국제기구에 넘겨주고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이러다간 얼마 안가 미국의 개입을 비난할 자격조차 잃

게될 것이다.우리 요구처럼 우리가 한반도 문제해결과 협상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도 이번 대북(對北)식량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식량지원조차 거부하는 남쪽에 북한동포들이 무슨 희망을 걸겠는가.

'목을 좀 더 조여서'북한을 재기불능으로 만든다든가,식량의 군량미 전용설을 증폭시키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국제적으로 전 한민족을 웃음거리로 만들 뿐이다.

이호재 <고려대 국제정치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