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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늦깎이 등단한 'TV 문학관' 연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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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드라마 'TV문학관'을 통해 문학을 영상화하는 데 젊음을 바친 노(老)PD가 정년을 눈앞에 두고 문단에 데뷔했다.

최근 발간된 '현대수필' 여름호에서 신인 수필가로 뽑힌 장기오(58.KBS 대PD)씨. 1981년 이문열 원작의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지난해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강물은 흐른다'(원작:공지영의 '길')까지 총 26편의 'TV문학관'을 연출한 그는 "평생 문학의 언저리에서만 맴돌다 이제야 진짜 꿈을 이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장씨는 중.고교 시절부터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를 꿈꿨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문학도의 길 대신 방송사 취업을 택했다. 하지만 가지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해마다 신춘문예에 글을 써보내고 낙방하기를 10여년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TV문학관'의 연출을 맡게 됐습니다. 좋아하는 문학과 연결될 수 있는 끈을 잡았으니 신바람이 났지요."

장씨는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각종 문학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며 TV 화면에 옮길 소설을 직접 고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도 많았다.

"이병주 선생님의 중편소설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를 드라마로 만들 때였어요. 하루는 선생님께서 전화를 걸어 '장 감독, 그거 어려운데 할 수 있겠나'하시더군요. 복잡한 내용 중 독립운동 군자금을 갖고 튀었지만 애국지사 대접을 받는 주인공이 자신의 비밀을 아는 동지들을 하나씩 죽여가는 부분만 각색해 만들었지요. 방송이 끝난 뒤 선생님께서 부르더니 새벽 네시까지 술을 사주시데요."

드라마를 연출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시.소설.수필을 써오던 그는 얼마전 '현대수필'에 '여의도 풍경' 등 세편의 수필을 보내 마침내 등단(登壇)에 성공했다.

"그 동안 'TV문학관'을 위해 많은 책을 읽은 게 자양분이 됐나 봅니다. 이달 말로 정년퇴직을 하지만 평생 할 일이 새로 생겼네요."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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