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영화] 헛된 집착, 처절한 파국 부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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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감독 : 바딤 페렐만
주연 : 제니퍼 코넬리.벤 킹슬리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홈페이지 : (www.dreamworks.com/houseofsandfog/index2.html)

20자평 : 집착, 그 파멸로 이르는 단어.

집착은 모래 같다. 그리고 안개 같다. 손에 잡힐 듯 눈 앞에서 아른거리지만 움켜쥐려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다 스르르 미끄러져 버리는-.

'모래와 안개의 집'은 결국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에야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이 모래 같고 안개 같은 집착에 관한 얘기다. 처음엔 희망이란 이름이었지만, 서로 나눌 수 없었기에 파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집착 말이다.

1999년 출간한 안드레 듀버스 3세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집 한 채의 소유권을 놓고 두 사람이 벌이는 밀고 당기는 싸움이 전부다. 이게 무슨 얘깃거리가 될까 싶을 만큼 소재는 단순하지만 영화는 126분 내내 관객의 시선을 또렷하게 붙잡아 둘 만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탄탄한 원작에다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에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의 행동에까지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자, 여기 가진 것이라곤 오직 집 하나 밖에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아버지가 30년을 모아 물려준 유일한 재산인 해변 낡은 집에서 살고 있는 캐시(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이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대령이었지만 쫓겨나 미국에서 막노동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마수드 베라니(벤 킹슬리)다. 아무 삶의 의욕 없이 살아가는 캐시 앞에 퇴거 명령을 수행하러 온 법원 직원이 들이닥친다. 불과 몇백 달러의 세금 체납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간 것. 뒤늦게 정신을 차려 집을 되찾으려 하지만 그 사이에 베라니가 전 재산을 털어 이 집을 사들인다. 전망 좋은 이 집을 수리한 후 비싼 값에 되팔아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려는 희망에 마수드는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두 사람은 서로 집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여기에 캐시에게 반한 경찰 래스터가 끼어들면서 이 사소한 싸움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모래와 안개의 집'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없다. 다만 서로 입장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끝까지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냉정하게 캐시를 물리치던 마수드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들 앞에서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절규하는 장면은 누구라도 집착의 덧없음을 느낄 만큼 강렬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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