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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가 있는 음악산책] '장수 음악' 판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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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노래, 즉 '소리'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 좋아하기로 세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마이크 한 번 잡았다 하면 놓지 않을 만큼 좋아하더니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긴 노래로 판소리를 기네스북에 올려 놓았다. 무려 8시간의 긴 노래다!

▶ 김경렬 화가의 작품 "자연의 초상" (左)과 필자의 누드크로키의 만남.

달랑 조그만 소리 북 하나와 추임새로 반주하는 고수(鼓手)와 함께 등장한 소리꾼이 역시 달랑 부채 하나 손에 들고 여러 몸짓과 함께 소리를 하면서 청중을 웃겼다 울렸다 하는 1인 노래극인 판소리. 문학과 음악.무용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어우러져 긴 시간 동안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청중도 추임새를 한다고 '얼씨구 좋다! 으이, 좋지!'하면서 거드니 모두 어느새 한 소리판이 된다. 마치 잘 비벼진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전주비빔밥과도 같다.

춘향가에서는 정열(貞烈)이 주제가 되고, 심청가는 효(孝)를, 흥부가.수궁가.적벽가는 각각 제(悌)와 충(忠), 그리고 신(信)을 주제로 하며 삼강오륜과 순박한 정서를 노래하기에 참으로 좋은 정신건강 음악이다. 옛날 한 명창이 새소리를 냈을 때 실제로 새가 날아들었다 하니 곧 자연음향 음악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간 국악을 김치나 청국장과 같은 자연발효식 건강음악이라고 말해왔다. 세계적인 테너 파바로티는 은퇴공연 시점을 65세로 잡았는데,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하시던 그 유명한 박동진 선생은 돌아가시던 92세까지 매일 세 시간도 넘게 소리하셨다 한다. 바로 장수음악이다.

성우향.성창순.오정숙.조상현.안숙선 선생 모두 김경렬 화가의 거목 그림 '자연의 초상'과 필자의 누드크로키 '강인한 생명력'처럼 거대한 성량으로 아직도 감동적인 소리를 하고 있다. 최근에 만난 조상현 선생의 말씀이 '판소리를 하면 폐활량이 늘고 심폐기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판소리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정말 그러하다. 사실, 예로부터 말더듬이, 천식, 안면신경마비증상 등을 치료하는 가창요법이 있었다. 또 만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우울증과 노인성 치매 치료에도 좋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의 잭 실즈 박사는 횡격막까지 깊게 쉬는 호흡이 세포의 큰 독성물질과 과도한 체액을 배출하는 유일한 수단인 림프시스템의 세척작용을 촉진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최근 연구에서 밝히고 있다. 즉, 혈액 순환계에 가장 중요한 산소 공급을 원활히 할 뿐 아니라 우리 몸을 방어하는 백혈구를 포함하고 있는 림프액의 흐름을 조절해 면역체계가 최고 수준에서 작용하도록 하여 암 발생률을 뚝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도시사람들은 공해 속에서 흉식호흡으로 얕고 가쁜 숨을 할딱거리듯 쉬니 양기가 쉬 빠져나가고 수명도 짧다. 판소리를 하면 자연히 심호흡, 즉 단전.복식호흡 또는 복식역호흡을 하게 된다. 노래를 단전.복식역호흡으로 계속해온 필자의 피부에 대해 얼마 전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에서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음을 간직한 모습'이라고 했다.

판소리는 비단 개인 건강에만 좋은 게 아니다. 씩씩하고 웅장하게 또는, 정교하며 감칠맛이 나게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계층 간의 갈등을 없애기도 하여 일체동심토록 한다. 더구나 도덕적 덕목 고양과 여가선용도 되니 국가적 건강프로젝트음악이요, 신토불이 시대에 딱 맞는 건강 레저음악인 것이다.

노래 가(歌)자는 하품하듯 심호흡으로 길게 뽑으라는 의미다. 자! 춘향가에 나오는 사랑가 중 한 대목을 입을 크게 벌리고 목청껏 불러보자. 그러면 즐거워지고 대뇌의 노쇠가 지연되며 활기차게 돼 건강장수하게 된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얼씨구!"

김태곤 가수 (www.kimtaeg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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