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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뮤지컬 이 캐릭터를 주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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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밑에 돌아보니 2008년 한국 뮤지컬, 별로였다. 2001년 이후 해마다 20%정도의 성장세를 보이던 시장 규모가 우선 주춤했다.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작아졌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시장을 선도하던 외국 라이선스 뮤지컬들의 흥행 실패가 주요인이었다. 창작 뮤지컬은 ‘무비컬’을 중심으로 나름 선전했지만 기존 질서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2009년은 다르다. 지금껏 보기 힘들었던 형식의 문제작들이 속속 무대화된다. 제작 방식의 다변화, 뮤지컬 전용관의 출현 등도 반갑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낡은 구조를 타파하고 복잡한 인간 심리를 포착한, 살아 꿈틀거리는 등장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진일보다. 그래서 꼽아봤다. 2009년 화제작들의 주인공을 통해 본 ‘2009 뮤지컬 인물 열전’이다. 이들이 얼마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느냐에 따라 2009년 뮤지컬의 ‘성공’과 ‘깊이’가 판가름난다. 

최민우 기자

‘드림걸즈’의 에피
뚱뚱해서 안 된다고? 내 노래 들어봐!

에피는 뚱뚱하다. 외모가 출중하지 않다. 대신 노래는 잘한다. 사람들도 그걸 안다. 하지만 알고 있을 뿐이다. 시선은 예쁜 디나에게 꽂혀있다.

‘드림걸즈’는 3 인조 여성그룹의 우정과 질투, 그리고 화합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왼쪽부터 세 여주인공 로렐(김소향)·디나(정선아)·에피(홍지민).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대중의 욕구를 어찌 제작자라고 외면하랴. 게다가 성공을 위해 속임수와 음모, 로비를 서슴치 않는 냉혈한이라면 더욱 그러할 터. 커티스는 은밀히 공작을 한다. 디나를 중심으로 새로운 팀을 꾸리려 한다. 그때 에피는 커티스의 애를 가진 상태. 그건 커티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피는 좌절해 밀려나 듯 떠난다. 비운의 여주인공, 아닌 조연이다.

여기까진 전형적인 신파다. 2막에 반전이 숨어있다. 사람들이 커티스의 비열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연대한다. 그 축이 에피다. 에피도 소극성·패배감을 떨쳐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과 맞서 싸운다. 마이너리티의 극적인 성공 스토리다. 외모가 안돼도 실력으로 정면돌파할 수 있음을 작품은 웅변한다.

영화로 히트했다. 2006년 영화에서 에피를 연기한 제니퍼 허드슨은 케이블 TV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된 풋내기에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까지 거머쥐며 영화의 ‘못난이 콤플렉스 극복기’를 현실에서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뮤지컬은 한·미 합작이라는 새로운 실험에도 도전한다. 미국에서 창작을 담당하고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방식이다.

▶2월 27일부터 5개월간 샤롯데 무대에 오른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멜키어
10대의 방황과 좌절 “나 어떡해”

10대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멜키어는 똑똑하다. 도전적이며 리더십이 있다. 주변에 친구들이 항상 따라 다닌다. 여학생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다.

모리츠는 멜키어의 친구중 하나다. 그는 범생이다. 부모님의 기대가 높지만 이를 맞추지 못해 허덕거린다. 그러던 중 시험까지 낙방한다. 그리곤 자살한다. 이뿐이 아니다. 멜키어의 여자친구인 벤들라는 임신을 한다. 벤들라 역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이 모든 충격적인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멜키어 역시,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다.

그러나 마지막, 환영처럼 나타난 친구들의 음성에서 멜키어는,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10대들의 좌절을 이토록 신랄하게 꼬집은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뮤지컬판 ‘교실 이데아’라 할 만하다.

▶6월 30일부터 6개월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
질투·연민 뒤섞인 ‘귀곡성’의 귀환

전설의 귀환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한국에서 처음 공연됐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여됐지만 7개월간의 공연 결과는 이를 훌쩍 넘었다. 이때부터 한국 뮤지컬은 시장이 됐고, 산업이 됐다.

성공의 중심엔 물론 유령이 있다. 그는 질투와 연민을 동시에 품은 매혹적인 인물상에 금속성 짙은 목소리로 무대를 장악한다. 하이톤으로 끌고 가는 귀곡성은 진짜 유령을 연상시킬 만큼 서늘하게 다가온다.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선망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다. 작품은 현재 오디션을 진행중이다. 무려 1000명이 넘는 배우들이 응했다. 특히 유령역 응시자중 40% 가량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활동중인 성악가다. 클래식과 뮤지컬·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도, 배우들의 외연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도 유령의 위력은 막강하다.

▶9월 중순부터 샤롯데에서 9개월 동안 공연될 예정이다.


‘영웅’의 안중근
비극적 영웅의 인간적 매력에 초점

2009년은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의거 100주년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만주 하얼삔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잡혀 일본군에게 죽음을 당한다. 작품은 그 과정을 역으로 재구성해 가면서 ‘인간 안중근’에게 초점을 맞춘다.

설희라는 인물의 등장은 신선하다. 궁녀였던 그는 명성황후 시해현장의 기억을 가슴에 꽁꽁 쟁여둔 채 또 다른 거사를 꿈꾸며 일본으로 건너간다. 조선 독립을 위해 여성 스파이를 자처한 것이다. 설희와 안중근은 서로에게 애틋하나 표현도 하지 못한다. 만나지도 못한다. 편집된 화면처럼 쓸쓸히 무대를 스쳐갈 뿐이다.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흥미롭다. 하얼삔 역에서 펼쳐지는 총격신은 실제 기차가 무대에 등장할 예정이다.

제작사는 “한국판 미스 사이공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지금껏 한국 뮤지컬이 도달하지 못한 스펙타클함의 새로운 전범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거사일에 맞춰 10월 26일부터 두 달간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퀴즈쇼’의 이민수
고학력 백수 ‘88만원 세대’가 사는 법

김영하의 소설이 원작이다. 민수는 고학력 백수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키워졌지만 그늘은 별로 없다. 오히려 여류롭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도 않는다. 그저 꿈꿀뿐이다. 잡다한 지식을 자랑하며 컴퓨터에 푹 빠져 있다.

작품은 ‘88만원 세대’의 풍속도다. 답답한 고시원이 등장하고, 인스턴트 식품처럼 휙휙 지나가는 편의점이 그려지며, 소박한 삽겹살에 기뻐하고 동감하는 젊은이들이 나온다. 그 어디에도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심각한 철학으로 누군가를 주눅들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이 있을 뿐이다. 가장 실존적이며,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가감없이 소개될 뿐이다. 오락성과 판타지가 거세된, 사회성 짙은 창작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12월 5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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