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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換差損에 기업마다 몸살 - 원화가치 급락 경영대책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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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월초 정몽구(鄭夢九)현대그룹회장은 97년도 경영전략회의에서 환율변동을 올해 경영의 최대 핵심변수로 꼽았다.

鄭회장은“올해는 환율이 급변할 것”이라며“환율변동을 경영에 유리하게 활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부분 그룹이 올 연평균 환율을 당초엔 1달러에 8백10~8백30원 정도로 보고 사업계획을 짰으나 환율이 가파르게 올라 이미 9백원에 육박하고 있다.

그룹마다 환율예상치를 수정하고 있으나 폭을 얼마로 할지 고민중이다.이에따라 사업계획 수정도 흔들리는등'환율 비상'의 여파가 심각하다. 〈관계기사 1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한진그룹은 지난해 환율인상 때문에 3천3백억원의 손해를 봤다.항공기 도입등으로 달러로 빌린 부채가 45억달러에 달하는데 1년 사이 원화환율이 달러당 66원이나 상승해 거액의 환차손을 본 것이다.

최종옥(崔琮沃)재무팀 차장은 “올해도 지난 석달 사이에만 환율이 달러당 50원가량이나 올랐기 때문에 이미 지난해 수준에 육박하는 환차손을 보고 있다”고 걱정했다.

연간 원유도입기금으로 70억달러의 외환을 쓰고 있는 유공도 지난해 약 1천억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현대그룹 종기실 현기춘(玄基春)부장은“당기순익에 반영되지 않은 환차손까지 치면 반도체 3사는 지난해 모두 적자”라며“현재 국내기업들이 가장 염려하는게 환차손”이라고 말했다.

삼성.현대.LG.대우등 주요업체마다 미국.유럽등에 대규모 복합공장을 설립하면서 거액의 해외자금을 빌려 썼는데 환율 때문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權純旴)수석연구위원은“자본자유화 이후 기업의 해외기채가 급격히 늘면서 과거엔 없던 외화부채가 생겨났다”며“94년말 5백69억달러였던 총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선 것중 상당부분이 기업몫”이라고 분석했다.

權위원은“외채에 대한 지난해 원리금 상환액만 1백7억달러이기 때문에 원화환율이 달러당 1백원만 올라도 원리금 부담이 1조원이나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원화가치 하락의 그림자=權위원은 “원화가치가 떨어져도 과거처럼 수출에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대부분 제품이 일본과 경쟁하는데 달러에 대한 엔화하락 폭이 우리보다 더 커 가격경쟁력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지의 30대그룹 대상 조사결과'환율상승이 수출가격 경쟁력에 미친 영향'에 대해 13개 그룹만'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응답했고 14개 그룹은'별 영향이 없다',2개그룹은'오히려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韓相春)박사는“원화가치가 떨어질수록 뚜렷해지게 마련인 수입억제 효과도 우리나라 수입구조 자체가 값을 불문하고 사지않을 수 없는 생산설비.원자재 비중이 높아 큰 효과가 없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수입의존도가 높아 달러화 강세는 바로 원가부담으로 이어지면서 물가상승의 압력으로 작용할 소지도 크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올해는 64메가D램등의 생산체제 구축,비메모리사업 본격추진등 전자업계에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은데 환율 때문에 비상”이라고 말했다.

◇달러갖기 저울질=현대자동차는 수출대금을 받으면 통상 2~3일간 외화예금으로 은행에 넣어둔다.외화차입금 상환과 수입결제대금을 위한 것이다.평상시 외화예금잔고는 5백만~1천만달러 가량 유지하는데 최근에는 최고 2천5백만달러에 이른

적도 있다고 한다.

달러값이 오르는 추세여서 달러를 원화로 바꿔 쓰기가 겁나기 때문이다.

이같은 외화 당좌예금이 현재 국내 외환보유고의 4분의1에 가까운

7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쌍용그룹 재무팀의 최명호(崔明浩)이사는“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영업비용으로 써야 해 무한정 외화로 보유할 수는

없다”면서“외화예금은 시간과 물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외화부채가 많은 정유회사나 항공사들은 달러값이 더 오르면 이미

사들인 달러로 기존 외화부채의 원리금 부담 증가를 상쇄하고,달러값이

내리면 사들인 달러는 손해지만 기존 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줄어

일종의'환리스크 회피'차원에서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의 이태열(李太烈)연구위원은“환율이 더 오른다는

전망 때문에 너도나도 달러 보유로 몰려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李연구위원은“정부가 환율 안정의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한다면

어차피 원화예금의 금리가 달러예금보다 높

기 때문에 달러 사재기등 가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받을건 늦게 줄건 빨리=삼성물산은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지난

1월10일부터 수출선수금(1억달러 규모)을 받지 않고 있다.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돈을 미리 받아봤자 도움이 안되며 만약 내려가면 손해볼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결과적으로 선수금을 안받은게 이득이

됐다”면서“외상수입대금은 반대로 결제를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늦출 것은 늦추고 당길 것은 당긴다는'리딩 앤드 래깅(Leading &

Lagging)'이다.즉 수출로 받을 달러는 늦게 받아야 환율이 더 오를 경우

유리하며 수입으로 지불할 달러는 오르기 전의 낮은 환율로 즉시 계산해야

유리한 것이다.이 때문에 쌍용정유와 ㈜쌍용은 원유수입대금을 즉시

결제하는 JIT(Just In Time)방식을 채택했다.

한진그룹은 외화차입 구조를 달러 대신 엔.원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기존의 달러부채를 엔.마르크로 바꾸는 리파이낸싱도 하고 있다.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대금을

달러.마르크.엔.디나르(리비아).원화등 5개국 통화로 나누어 받는등 환리스크

방지 노력을 기울였다.

유공은 원유를 전량 수입해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 석유의 환거래를

연구하기 위해 하반기에 직원을 보내 벤치마킹할 예정이다.

◇경쟁력이 관건=대신경제연구소의

황시웅(黃時雄)기업분석실장은“지난해말 일부 외국 펀드매니저들이 원화

환율이 달러당 9백원을 넘는다는 전망을 내놓았으나 정부차원에서 그동안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아 최근같은 환율비상이 왔다”고 말했다

.

한진그룹의 관계자는“외화금리가 원화금리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기업들이 외화차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환율을 안정시키려면 값싼

자금을 기업 자율로 쓸 수 있게 각종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재무팀의 김석(金奭)이사는“환율문제를 환율대책만으로 다뤄선

안되며 환율대책은 상업차관 확대,산업공동화 방지,임금안정등 패키지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근본적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해소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만이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수.이원호.신성식.유권하 기자〉

<사진설명>

기업마다'환율비상'이 걸린 가운데 LG그룹 해외사업팀 국제금융 담당자들이

전산망으로 환율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대부분 그룹들이 환율상승이 계속될

경우 경영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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