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또 내분 조짐 - 月珠 총무원장 중심체제에 개혁파 거센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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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조계종이 개혁 3년만에 또다시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종단운영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앞세우고 출범했던 현 개혁종단이 최근들어 월주(月珠)총무원장 중심체제로 기울자 개혁파들이 이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의 조짐은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월하(月下)종정의 사퇴가 가장 큰‘사건’이다.종정이 지난달 10일 사퇴서를 원로회의에 제출했을 때만 해도 현집행부는 사퇴서를 되돌려주면서 ‘해프닝’정도로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종정이 지난달 24일 또다시 사퇴서를 제출하고 그후 두차례나 통도사를 찾은 월주 총무원장을 만나주지 않자 이제는 월하의 사퇴를 현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자칫하다가는 다음달 14일 석가탄신일에는 종정의 법어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월하 종정의 사퇴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불교방송의 공금유용사건이 터져나오고 전통사찰보존법 개정이 논의될 때였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전통사찰보존법 개정의 경우 사찰환경보호라는 훌륭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에서는 문제 해결을 정부에 의존함으로써 불교의 자주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더구나 현집행부가 정부관계자및 국회의원들과 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각 사찰 주지들이 합의한 ‘전통사찰보존법 개정요구안’에 없던 내용까지 삽입된 것으로 밝혀져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문제의 조항은 전통사찰보존법 제6조 1항.동산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동산을 대여하거나 양도 또는 담보로 잡힐 때는 소속 단체 대표자의 승인서를 첨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이 조항은 법개정을 추진했던 국회의원들까지도 ‘사찰의 입장에서 보면 총무원장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조항’이라고 우려했을 정도로 총무원장의 권력을 강화시킬 소지가 많다.

종정 사퇴 직후에 나온 선본사(일명 갓바위)의 직영사찰해제 요구도 집행부에 반기를 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연 3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시주금으로 서의현(徐義玄)전총무원장의 ‘금고’로까지 불렸던 선본사야말로 개혁종단의 재정원일 뿐만 아니라 개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열상은 ▶불교방송비리▶선본사의 직영사찰해제▶6개월 이상 공석인 교육원장 선임등을 처리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개최한 임시종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고 회기를 넘겼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사태해결을 위해 현집행부는 권력분산의 취지에 맞게 종회·원로회의·교육원등 공적기구를 활성화시키고 종정은 집행부의 지나친 ‘실리’추구로 추락한 승가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승풍진작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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