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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인의 삶 카메라에 담은 성남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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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45) 씨는 “절망은 희망을 찾아가는 징검다리”라고 말했다. 절망을 넘어야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는 2008년 절망 속에서 희망의 불빛을 찾아냈다. 그곳은 서울 한복판, 옛 서울역사. 15년 가까이 세계 곳곳의 전쟁터를 누비며 난민의 아픔을 렌즈에 담고,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찍었던 그가 이번엔 서울역으로 눈길을 돌렸다. 노숙인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삶을 담은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 절망을 희망으로 찍어왔다. 서울역의 초라한 비둘기떼에서도 그는 희망을 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 달을 꼬박 들여 소주며 먹을 것을 사들고 찾아가 어렵사리 말문을 트고 눈도장을 찍었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그는 “태어나서 이렇게 욕 많이 먹으면서 사진 찍은 건 처음”이라는 말로 당시 상황을 요약했다.

그렇게 나온 사진들을 편집해 서울국제사진페스티발에 냈다. 전시는 서울역 바로 옆 건물인 옛 서울역사에서 다음달 15일까지 계속된다.

성남훈씨가 2002년 전쟁의 상처를 겪은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

“외환위기 때도 샐러리맨을 주제로 작업을 했지만 올해는 유독 더 상황이 안 좋은 게 피부로 와 닿아요. 다니는 사람들 표정도 그렇고, 노숙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노숙인들도 잠들기 전엔 항상 ‘내일은 일거리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야’라며 희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사실을요. 절망하면서도 희망하는 거지요.”

고통을 고통으로 찍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해외여행 광고판 밑에 움츠린 노숙인도 그의 사진에 등장한다. 더욱 눈에 띄는 건 상자로 만든 집에서 헌 색동이불을 덮고 자는 이들이나, 진분홍 우산을 그늘 삼아 누워있는 이들이다. 색동과 분홍의 강렬한 색감으로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선명한 코소보 난민촌을 다룬 사진에서도 그가 잡아낸 이미지는 저녁밥 짓는 연기를 배경으로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서울의 달동네를 표현한 사진에서도 그는 허름한 벽 옆에 헌 흰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웃는 얼굴을 찍었다.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어요. 다만, 셔터를 눌러 담아낸 이미지로 사람들의 기억을 연장하고 인식의 폭을 확장한다면, 사진이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는 되겠지요. 그게 바로 제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그는 사진을 한 장씩 액자로 걸지 않고, 여럿을 묶어 하나의 이미지로 편집해 내놨다. 앞으로 할 작업엔 동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작정이다. 만나는 이들의 인터뷰 영상도 챙기고, 작업한 사진을 감각적으로 편집해 많은 사람의 감성을 울리고 싶다고 한다.“나 혼자만을 위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공감을 넓혀야지요.”

그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사라져가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가 주인공이다. “지금까진 전쟁, 난민,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대 담론에 빠져있었지요. 그런데 환경문제는 이와 달리 바로 우리 생활이잖아요. 오염으로 인한 재앙은 그야말로 전 인류가 직면할 위기이니까요.”

새해에는 아프리카로 날아갈 계획이다. 기아로 허덕이면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화가를 꿈꿨으나 경영학과에 들어갔고, 대학에 다니면서 전공보다 연극에 빠져 지냈다. 어느 날 친구가 건넨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카드에 담긴 풍경을 보다 “붓보다 카메라로 더 많은 얘길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됐다. 현지 사진에이전시 ‘라포’ 소속으로 코소보·르완다·아프가니스탄 등을 돌며 사진 작업을 해왔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을 더 알고 싶은 마음뿐이다.

“제가 뭐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사진기 들고다니며 계속 배울 뿐이지요. 보면 볼수록, 공부할 게 많네요.”

전시 관람 문의는 www.sipf.net, (02) 2269-2613.

전수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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